바람의 왕, 고국원왕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멀리 평양성 밖의 들판을 바라보았다. 광활한 초원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으나 그의 눈에는 근심의 빛이 가득했다. 이 땅을 지켜내는 것이 그의 숙명이었고, 또한 그가 걸어가야 할 외로운 길이었다.
고국원왕은 고구려 제16대 왕으로, 어려운 시기에 즉위했다. 그는 고국천왕의 손자였으며, 미천왕의 아들로서 왕위에 올랐다. 고구려가 북방과 남방에서 끊임없이 적의 침략과 외교적 갈등을 겪고 있을 때였다. 백제와 신라, 그리고 북으로는 중국의 전연(前燕)까지 그를 끊임없이 위협했다.
왕은 어린 시절부터 전쟁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며 성장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강인한 의지로 단련되었고,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키웠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고구려를 둘러싼 힘겨운 싸움은 날이 갈수록 격렬해져갔다.
그의 가장 큰 시련은 남방의 강력한 적인 백제였다. 근초고왕이 이끄는 백제의 군세는 강성하여 고구려의 남부 국경을 끊임없이 압박했다. 369년, 근초고왕의 군대가 치열하게 고구려를 침공해왔다. 전쟁의 참혹함과 함께 민초들의 울부짖음이 평양성을 뒤덮었고, 고국원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아갔다.
전투는 치열했다. 창과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으며, 병사들의 피가 강물을 이루었다. 왕은 전장 한가운데에서 적을 몰아내기 위해 분투했으나, 고구려의 군세는 백제의 강력한 군대 앞에서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백제의 강력한 병력 앞에 결국 고국원왕은 평양성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전장에서 전사한 최초의 고구려 왕으로 기록되었지만, 그의 삶이 비극으로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후, 아들 소수림왕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나라를 개혁했다.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워 인재를 키웠으며,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 고국원왕의 비장한 죽음은 고구려가 더 강력하게 일어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생애는 비록 치열한 투쟁과 쓰라린 패배로 점철되어 있었으나, 한 시대의 왕으로서 온몸으로 역사를 감당하고, 민족의 운명을 짊어졌던 무거운 삶이었다. 그는 패배했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았으며, 그의 혼은 고구려의 산하 곳곳에 스며들어 후손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었다.
고국원왕이 바라보던 평양의 초원 위로 다시 한번 바람이 스쳐갔다. 그 바람 속에는 왕의 깊은 한숨과 굳은 결의가 담겨 있었고, 고구려의 미래를 위한 뜨거운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