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선 한 사내의 눈빛이 번쩍였다. 광개토대왕. 겨우 열여덟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장대한 북방의 강역을 지배한 사내. 피가 끓고, 바람이 분다. 이 대지의 주인이 누구인가. 바람은 말발굽 소리에 떨고, 강은 전쟁의 함성에 출렁인다.
고구려는 원래 그랬다. 땅이 넓어야 숨을 쉴 수 있었고, 칼날이 번뜩여야 적이 감히 넘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날, 소년왕 담덕의 가슴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고구려의 넓은 강산을 더욱 넓히리라.’
광개토대왕은 말 위에 올라 바람을 가르며 전장을 누볐다. 요동을 제 손에 쥐었고, 백제의 성을 불태웠으며, 신라가 도와달라 손을 내밀자 달려가 왜구를 몰아냈다. 한강을 두고 백제와 맞섰고, 북으로는 부여를 평정했다. 그 손길이 닿는 곳마다 고구려의 깃발이 펄럭였다.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대륙의 주인이었다.
전쟁터에 나서면 광개토대왕은 앞장섰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도 누구보다 먼저 창을 들었고, 땀에 젖은 머리칼이 흩날려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부하들이 물었다. “전하, 어찌하여 몸소 창을 드십니까?” 왕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앞장서겠느냐.”
적들은 두려워했다. 광개토대왕이 움직이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았다. 백제의 왕이 그 이름을 듣고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빌어 나라를 지켜야 했다. 왜구들은 한반도의 동쪽 바다를 타고 노략질을 일삼았으나, 광개토대왕의 군사들이 몰려가자 두 손을 들고 바다 건너로 도망쳤다.
그는 다만 영토를 넓힌 정복자가 아니었다. 백성들의 삶을 돌보고, 나라를 단단히 다졌다. 강한 나라는 칼끝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성을 쌓고, 제도를 정비하고, 무역을 일으켰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려야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나라 역시 기둥이 튼튼해야 했다.
그러나 왕에게도 시간은 공평했다. 너무 많은 전투, 너무 험한 길을 걸어온 탓일까. 그의 몸은 서서히 쇠약해졌고,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남았다. 광개토대왕릉비. 그 커다란 돌에는 그가 지나온 길이 새겨졌다. 피와 땀으로 써내려간 고구려의 이야기였다.
사내가 죽어도 그의 말발굽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혼은 바람이 되어 대지를 감쌌고, 그의 뜻은 후손들에게 남았다. 광개토대왕. 그의 시대는 끝났으나, 그의 이름은 천 년을 넘어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역사는 종종 한 사람의 뜻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증명해 보인다. 광개토대왕, 그는 단지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만든 자였다.
광개토대왕의 이름은 단순한 왕호가 아니다. 그는 고구려의 강역을 한반도를 넘어 만주와 요동까지 확장한 장군이었고, 그의 원정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결정짓는 길이었다. 그가 정복한 땅들은 후대 고구려의 기틀이 되었고, 그의 용맹은 고구려의 혼으로 남았다.
백제와의 전쟁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었다. 한강 유역을 두고 벌어진 전투에서 광개토대왕은 단순히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 이상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백제의 세력을 꺾어 한반도의 패권을 고구려가 장악하도록 만들었고, 남쪽으로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하지만 백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계왕이 이끄는 백제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결국 양국 간의 싸움은 장기전으로 번졌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은 밀리지 않았다. 그의 군대는 강했고, 그의 전술은 치밀했다.
신라는 왜구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다를 건너온 왜의 군대는 신라의 해안선을 따라 노략질을 일삼았고, 신라는 점점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때 신라는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했고, 광개토대왕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5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신라를 구했고, 왜구를 무찔렀다. 이 원정으로 인해 신라는 고구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가가 되었고, 한반도의 역학관계는 크게 변화했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군사적인 정복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으로도 탁월한 지도자였다. 고구려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을 쌓았고, 국경을 확장하며 강력한 요새를 구축했다. 또한 내부적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고, 도로를 정비하며, 농업과 무역을 장려했다. 고구려가 강한 이유는 단순한 군사력 때문만이 아니라, 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한 그의 정책 덕분이었다.
광개토대왕의 죽음은 고구려에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장수왕은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고구려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의 정신은 후대 왕들에게 계승되었다.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왕이었고, 그의 전설은 아직도 바람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