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과 외교...그리고 강한 자의 조건

  • 등록 2025.03.10 07: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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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과 외교, 그리고 강한 자의 조건

 

역사는 말한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강한 자란 무엇인가. 군사력인가, 외교력인가, 시대를 읽는 통찰력인가. 신라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졌다. 그리고 그 모든 요소가 합쳐졌을 때, 676년, 신라는 마침내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신라가 이룬 통일은 진정한 통일이었는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라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삼국 통일, 그 시작은 배신이었다

 

7세기 중반. 한반도의 패권을 둘러싸고 세 나라가 서로를 견제하며 팽팽한 긴장 속에서 버텨왔다. 고구려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광활한 영토를 가졌고, 백제는 해상 무역과 뛰어난 문화적 역량으로 존재감을 키웠다. 신라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러나 신라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강한 적과 맞서기보다 더 강한 힘을 등에 업기로 한 것이다.

 

태종 무열왕(김춘추)은 당시 동아시아 최강국이던 당나라와 손을 잡았다. 국익을 위해 오랜 동맹이었던 백제를 배신했다. 660년, 나당연합군은 백제를 무너뜨린다. 백제 의자왕은 항복했고, 사비성은 함락되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진정한 승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였다.

 

고구려의 멸망과 신라의 위기

 

668년, 나당연합군은 고구려까지 무너뜨린다. 연개소문이 죽고 내분이 극심했던 고구려는 힘없이 무너졌다.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킬 듯 보였던 당나라의 야욕이 드러났다. 백제와 고구려가 사라지자, 이제 신라의 차례였다.

 

당나라는 신라를 동맹이 아닌 속국으로 만들려 했다.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려 했다. 신라는 이를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 신라는 이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675년, 매소성 전투. 신라는 당나라 군대를 막아냈다. 1년 후, 기벌포 전투. 신라군은 당나라 수군을 섬멸했다.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야욕은 무너졌고, 676년, 신라는 한반도 남부를 장악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통일이었을까.

 

신라의 통일, 그러나 반쪽짜리 통일

 

신라는 분명 살아남았다. 그러나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는 발해가 차지했다. 지금의 만주 지역과 한반도의 북쪽은 여전히 신라의 것이 아니었다. 즉, 한반도 중심의 통일이었지, 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은 아니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신라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신라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동맹을 배신했고, 전쟁을 치렀고, 외세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통일 이후, 신라는 내부 권력 다툼으로 점점 쇠락했다. 통일을 이루었지만, 그 통일을 유지하는 힘은 오래가지 못했다.

 

강한 자는 누구인가

 

신라의 삼국 통일은 한반도 최초의 통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통일이었는가? 전쟁과 외교, 배신과 생존이 얽힌 복잡한 과정이었다. 신라는 살아남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우리는 지금 다시 묻는다. 강한 자란 누구인가. 전쟁에서 이긴 자인가, 시대를 읽고 살아남은 자인가. 신라는 적어도 그 순간에는 강한 자였다. 그러나 영원히 강한 자는 없다는 것 또한,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실이다.

헤드라인경제신문 기자 auroraa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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