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통일, 고려․․․통합의 리더십
역사의 물결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지 300여 년, 한반도는 다시금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통일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고, 신라는 쇠락했다. 그리고 강한 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스스로 왕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900년대 초,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
혼돈의 시대, 왕이 된 자들
신라는 더 이상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중앙의 권력은 무너졌고, 지방에서는 새로운 세력들이 힘을 키웠다.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세웠고,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했다.
견훤은 야심가였다. 백제의 후예를 자처하며 신라를 몰락시킬 계획을 세웠다. 강한 군대를 갖추었고, 전라도와 충청도를 장악했다. 그는 빠르게 성장했다.
궁예는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고구려 왕족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처음에는 이상적인 군주였다.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펼쳤고,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모습은 변했다. 독선과 폭정으로 백성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918년, 부하들은 결국 그를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왕건이었다.
고려의 시작, 왕건의 선택
왕건은 궁예와는 달랐다. 그는 전쟁보다 화합을 중요하게 여겼다. 바다를 통한 무역으로 강한 기반을 다졌고, 외교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918년, 왕건은 고려를 건국했다. 그의 목표는 단순했다. 이 땅을 다시 하나로 만드는 것.
그는 먼저 신라를 바라보았다. 신라는 이미 힘을 잃고 있었다.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왕건에게 항복을 결정했다. 왕건은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을 우대했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신라를 고려로 통합했다. 전쟁 없이 나라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후백제는 달랐다. 견훤의 아들 신검은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그러나 내부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견훤은 왕건에게로 망명했고, 왕건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를 향해 진군했다.
최후의 전투, 고려의 통일
936년, 일리천. 고려의 군대와 후백제의 군대가 맞붙었다. 전쟁의 신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왕건은 후백제의 분열을 정확히 이용했다. 견훤을 따르던 장수들은 이미 왕건의 편에 서 있었다. 고려군이 밀고 들어갔다. 후백제의 군대는 무너졌다. 신검은 항복했고, 후백제는 사라졌다.
이로써 고려는 한반도를 완전히 통일했다.
후삼국 통일의 의미
왕건은 무력으로만 통일을 이루지 않았다. 그는 화합을 선택했고, 정치적 안정을 추구했다. 신라와 백제, 고구려의 후손들이 모두 고려의 백성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민족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유교와 불교를 융합했고, 해상 무역을 발전시켜 고려를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 고려가 통일을 이루었지만,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자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강한 자는 결국 또 다른 강한 자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왕건이 만든 나라, 고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한 시대를 지배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강한 자란 누구인가. 왕건은 전쟁에서 이겼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는 그 시대의 강한 자였다. 그러나 역사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