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문 – 바다 너머에서 시작된 이야기
바람이 불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닷결이 찰랑이며 부드럽게 섬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 바람은 오래된 조가비 속에서 잠들어 있던 시간을 깨웠고, 이름 없는 섬의 돌담 너머로 고요한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다 위에 흩뿌려진 조각 같았다. 큰 대륙에서 조금 떨어진, 물비늘 아래 작은 군도의 세계. 이 섬나라는 대륙과는 다르게, 계절과 바람의 얼굴을 고스란히 받아들였고,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리듬을 만들며 조용히 살아왔다. 그들이 부르는 이름은 니혼 혹은 닛폰, 해가 떠오르는 나라였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땅에 정착했지만, 그들의 역사는 한 번도 대륙처럼 거대하게 외쳐지지 않았다. 그들은 바람처럼, 물결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역사의 형상을 지워갔다. 조용한 저편에서, 외침보다 침묵이 더 무겁게 쌓인 땅.
일본이라는 이름은 바다 건너 중국에서 건너왔다. 당나라 시절, 한 사신이 보고 들은 바로, “해가 뜨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라 했다. 그 말이 이 섬의 이름이 되었고, 그 후부터 그들은 스스로를 태양의 민족이라 믿기 시작했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그 광휘를 품고 사는 자들.
지리적으로 일본은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의 네 주요 섬과 수천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은 추위가 강하게 내리치고, 남쪽은 아열대의 따뜻한 공기가 밀려온다. 이 다양함은 자연 그대로의 교과서가 되었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을 빚어냈다.
이 섬들은 고립되었으나 고립되지 않았다. 바다는 차단막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연결선이기도 했다. 대륙에서 불어오는 사상과 기술, 그리고 사람들은 조류를 타고 이곳에 닿았다. 고대의 철기, 불교, 한자, 문명은 바다를 건너왔다. 그렇게 섬나라는 외부를 품되, 자신만의 것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일본사란, 이 바다를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그 역사를 무사와 천황의 전쟁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고즈넉한 사원과 벚꽃 아래의 연가로 기억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결국 바다와 바람이 남긴 흔적이다. 이 이야기는 그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우리는 이제 그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누군가의 울음, 누군가의 칼날, 누군가의 기도가 바람을 타고 전해질 것이다. 비록 작은 섬의 역사일지라도, 그 속에는 거대한 마음의 격랑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격랑은 바다의 침묵을 뚫고, 지금 우리의 귓가로 스며든다.
2. 신화와 시작 – 야마토와 천황의 탄생
비는 그날 밤 조용히 내렸다. 세상의 틈이 벌어지고,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말을 주고받은 듯했다. 어둠 속에서 빗방울은 검은 흙을 적셨고, 그 흙에서, 전설은 움트기 시작했다.
일본의 시작은 신화로부터였다. 사람이 아닌 신이 먼저 이 땅을 밟았다고 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그들은 천상에서 땅을 향해 창을 드리웠고, 바다 위에서 휘돌린 창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섬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오노고로섬. 전설은 그렇게 출발했다. 설명하려 하지 않고, 다만 믿게 했다.
야마토라는 이름은, 그렇게 태어난 섬들 가운데 중심이 되었던 땅이다. 처음에는 작은 부족들의 연합이었다. 언어도 다르고 풍습도 다른 이들이, 강한 족장의 이름 아래 하나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선 자가 진무였다. 그는 신의 후손이라 했고, 동쪽으로 진군하여 나라를 세웠다. 기원전 660년, 전설 속 일본의 첫 천황이 등장했다.
진무천황은 실존인물이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단순한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국가의 이상이었고, 신과 인간을 잇는 상징이었다. 고대 일본은 이처럼 신화와 정치를 혼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화를 국가의 기둥으로 삼았다.
야마토 정권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세력을 넓혔다. 한반도와의 교류, 백제와의 동맹, 신라와의 긴장 속에서 철기와 문자, 불교가 유입되었다. 대륙과의 접촉은 이 섬나라의 문명화를 재촉했고, 작은 섬의 족장들은 스스로를 천황이라 칭하며 신의 계승을 입증하려 했다.
불교는 이 시기 가장 큰 변화였다. 원래의 신도와는 다른, 고요한 진리의 언어. 절이 세워지고, 불상이 만들어지고, 중국식 율령과 도량형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신과 부처, 토착과 외래가 겹쳐진 세계. 야마토는 그렇게 자신의 뿌리를 신화에 두되, 그 가지는 대륙의 영향으로 뻗어 나갔다.
이 시기의 천황들은 전사이자 사제였다. 그들은 기우제를 지내고, 제사를 올리며 동시에 정복 전쟁을 수행했다. 한 손에는 검을 들고, 다른 손에는 신탁의 거울을 들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곧 신의 명을 대신하는 일이었다. 백성들은 그 명에 고개를 숙였고, 역사는 그렇게 흘러갔다.
신화로 시작한 나라, 그것이 일본이었다. 그 시작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들이 믿은 세계는 실제였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오늘날까지도 천황이라는 존재의 그림자를 남겼다. 야마토는 더 이상 부족의 이름이 아니었고,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그리하여, 섬 위에는 왕좌가 세워졌다. 파도 소리를 등에 지고, 바람이 머물다 간 초록 언덕 위에. 그것이 일본이라는 신화의, 인간의 역사였다.
3. 불교와 귀족의 시대 – 나라·헤이안 시대
해는 천천히 들녘을 가르며 솟아올랐다. 아침빛은 연하고 부드러웠다. 그 빛이 나무의 끝을 비추고, 기왓장 위에 물방울처럼 떨어졌다. 나라의 거리는 아직 잠들어 있었지만, 한 줄기 향이 조용히 사원의 처마 아래를 감돌았다.
나라 시대는 일본이 처음으로 본격적인 도시 문명을 이루던 시기였다. 수도는 나라(헤이조쿄)로 옮겨졌고, 그곳에는 당나라의 장안을 본떠 설계된 격자형 도시가 세워졌다. 불교는 나라 시대의 중심이었다. 천황은 부처의 가르침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했고, 정치와 종교는 하나가 되었다.
도다이지의 대불은 그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천 개의 손을 가진 관음보살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사원의 종은 천년의 시간을 알렸다. 귀족들은 불상을 세우며 복을 기원했고, 백성들은 그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 시절의 불교는 신앙을 넘어 정치의 도구가 되었고, 천황은 곧 부처의 대행자였다.
그러나 빛이 강해질수록 그늘도 깊어졌다. 사원이 권력을 가지기 시작했고, 귀족들의 탐욕은 믿음마저 장식품으로 만들었다. 절은 더 높아지고, 부처는 더 화려해졌지만, 백성의 삶은 고단함을 벗지 못했다. 종교는 정치의 꼭두각시가 되었고, 천황의 권위는 종교 뒤로 숨었다.
이윽고 수도는 다시 옮겨졌다. 이번에는 헤이안, 오늘날의 교토다. 헤이안 시대는 일본 귀족 문화의 꽃이었다.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일본식 미의식이 탄생했다. 향을 피우고,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한밤중 달빛 아래 시를 읊는 삶. 그것이 귀족들의 일상이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겐지 이야기』였다.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여류 작가가 써내려간 이 이야기는, 사랑과 슬픔, 권력과 욕망이 섞인 인간의 서사였다. 그것은 일본 최초의 장편소설이자, 귀족의 정서가 글이 되어 남은 첫 기록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외피 뒤에 무너지는 기둥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귀족들의 정치는 문장 속에만 존재했고, 현실은 농민과 무사의 손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헤이안 시대의 끝자락에는 불안이 드리웠고, 어딘가에서 검은 기운이 자라고 있었다.
꽃이 피면 지듯, 찬란했던 귀족의 시대도 그렇게 저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일본은 자신만의 색을 찾았고, 그 색은 지금도 사계절을 따라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 흘러내림은, 다시 또 다른 시대를 향한 서곡이 되었다.
4. 무사의 시대 – 가마쿠라 막부와 무가정권
안개가 내려앉은 아침이었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회색 안개는 말의 숨결과 검의 날을 감췄다. 한 시대가 저물고, 또 다른 시대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귀족의 붓 대신, 무사의 칼이 역사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헤이안의 끝자락에서, 권력은 이미 말과 말 위의 사람들 손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말을 다루는 이들이었고, 또한 싸움을 숙명처럼 지닌 자들이었다. 무사는 귀족의 그림자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그 빛을 삼키려 하고 있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그 이름은 그렇게 시대를 바꾸는 칼끝이 되었다.
요리토모는 무가의 정점을 이루며 일본 최초의 막부를 연다. 가마쿠라 막부. 수도는 여전히 교토였지만, 실질적인 정치는 가마쿠라에서 이뤄졌다. 무사들이 다스리는 정권, 그것은 일본 정치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었다. 천황은 남아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바람처럼 희미해졌다.
무사의 시대는 법보다 명예가 앞섰다. ‘부시도’라 불리는 무사도 정신은 그들의 삶을 지탱했다. 충성과 절개, 죽음 앞의 평정. 때론 그것은 잔혹했고, 때론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하나의 윤리였고, 그 윤리는 일본인의 정신에 깊게 스며들었다.
몽골이 바다를 건너왔다. 칸의 명을 받은 수천의 병선이 큐슈 앞바다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날 밤, 바다는 바람을 일으켰고, 바람은 파도를 일으켜 침략자를 삼켰다. 신풍, 가미카제. 그 바람은 일본인들에게 신이 지켜주는 민족이라는 믿음을 새겨주었다. 그것은 무사의 시대에 더없는 자부심이었고, 외세를 거부하는 새로운 전설이 되었다.
무사의 정치는 단순하지 않았다. 권력의 중심은 막부였지만, 곳곳에 작은 분열과 충돌이 있었다. 호족들은 각자의 땅을 다스리며 작은 왕이 되었고, 그들 사이의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일본의 중세는 강한 중앙이 아닌, 퍼져 있는 권력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갔다.
그럼에도 무사의 시대는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갔다. 그것은 검의 질서였다. 검은 사사로이 뽑히지 않았고,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다. 충성이라는 이름 아래, 무사들은 명령을 받고, 죽음을 맞고, 또 새로운 무사를 길러냈다. 피는 물처럼 흐르되, 그 위에 명예가 떠 있었다.
그러나 피와 검이 만든 정권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워졌다. 가마쿠라 막부는 안에서부터 부패했고, 외부의 반란은 점점 거세졌다. 정치는 무사가 하지만, 그 무사를 다스릴 힘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역사는 또 한 번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서서히 또 다른 이름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남쪽에서, 혼란 속에서, 새로운 기운이 돋아났다. 무사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형태를 바꿔 또 다른 막부로 나아가고 있었다. 검은 아직 땅에 꽂히지 않았다. 그것이 일본의 중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