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에 끝내는 일본사 이야기2

  • 등록 2025.04.20 05:19:18
  • 조회수 9
크게보기

 

 5. 전란의 시대 – 전국시대와 삼대 영걸
먼지였다. 짧은 햇살 아래 떠오른 그것은 누군가의 발굽에서 튀어 오른 것이고, 또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산과 들이 전장의 외투를 입었고, 벚꽃보다 빨리 피고 더디게 지는 핏빛 바람이 불었다.
막부의 붕괴는 새로운 혼돈의 문을 열었다. 각 지방의 다이묘들은 스스로를 천하의 주인이라 부르며 검을 뽑았다. 누가 진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깃발 아래에서 싸웠고, 서로의 목을 걸고 전장을 건넜다. 이름 없는 농민들도 이 싸움에 끌려 들어갔다. 그들은 쌀을 얻기 위해, 땅을 지키기 위해, 혹은 이름도 모르는 무사를 따라 목숨을 걸었다.
그 와중에 하나의 이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들었다. 오다 노부나가. 그의 칼은 거칠었고, 그의 불은 모든 관습을 태웠다. 그는 절을 불태우고, 귀족을 무시했으며, 천황마저 자신의 말 위에 세웠다. 전통보다 속도, 의례보다 실리를 앞세운 그는, 마치 시대의 도끼처럼 묵은 질서를 쪼개기 시작했다.
노부나가는 정복자였다. 교토를 손에 넣고, 정적을 제거하며, 전국을 하나로 묶는 사슬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쥐기 전에 배신당했다. 혼노지에서, 가장 가까웠던 자의 칼끝에 쓰러졌다. 시대는 아직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허무했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시대를 잉태하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이어받은 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노부나가의 하급 무사에서 시작해, 칼과 머리로 정상까지 오른 인물. 그는 힘으로 얻은 세상을 정치로 지키고자 했다. 검보다 종이를, 전투보다 조약을 믿었고, 농민과 무사를 구분지어 세상을 관리했다. 전국은 하나로 묶였고, 잠시 평화가 찾아온 듯 보였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그 평화를 대륙에까지 뻗치려 했다. 조선으로 향한 그의 야망은 피의 강이 되었다. 일본은 다시 칼을 빼었고, 많은 무사들이 낯선 강과 산을 넘어갔다. 임진왜란. 그 전쟁은 히데요시의 야심이 만들어낸 불꽃이었고, 결국 그의 종말을 알리는 종이었다. 병들고 지친 그의 죽음은, 다시 세상을 혼돈 속으로 밀어넣었다.
세 번째 남자가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는 싸움보다는 기다림의 미덕을 아는 자였다. 그의 칼은 날카롭지 않았고, 대신 마음은 무거웠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고, 세상이 지친 틈을 타 결국 정점에 올랐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그는, 일본 전체를 손에 넣었다. 천하인.
도쿠가와는 막부를 열었다. 에도에 수도를 세우고, 무사들을 통제하며, 긴 평화의 틀을 짰다. 그의 시대는 안정과 억제의 시대였다. 모두가 칼을 벽에 걸고, 대신 땅을 다스렸다. 싸움의 끝, 무사정권의 완성. 일본은 그렇게 또 하나의 막부를 품었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들의 목적은 같았다. 나라를 통일하고, 시대를 만들고, 이름을 남기는 것. 피로 쓰인 이 세 장의 초상은, 오늘날까지 일본인의 기억에 깊이 새겨져 있다. 전국은 끝났지만, 그들이 남긴 자취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먼지가 다시 잠잠해진 들판. 그곳엔 다시 벚꽃이 피었고, 바람은 더 이상 비명을 담지 않았다. 그러나 그 향기 속에는 아직도 세 사람의 그림자가 서성이고 있다. 그것이 일본이라는 섬의, 가장 거친 파동이었다.

 

6. 봉건과 평화 – 에도 시대의 250년
비는 그날 얌전히 내리고 있었다. 분주하게 흔들리던 칼자루들이 진흙 속에 묻히고, 오래 울던 전장의 북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말들의 울음도, 군사들의 함성도, 그 모든 소란이 바람결에 씻겨내려갔다. 평화는 그렇게, 조용히 찾아왔다.
에도. 오늘날의 도쿄라 불리는 땅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 질서를 세웠다. 전란의 그림자가 물러간 자리엔 법과 통제가 놓였다. 막부는 천황 아래 있으되, 실질은 그 위에 군림했고, 전국의 다이묘들은 이 중앙권력 앞에 서서히 허리를 굽혔다.
에도 막부의 통치는 강단 있었고, 무엇보다도 질서에 철저했다. 무사는 전쟁이 없는 시대를 살게 되었고, 검 대신 붓을, 전장을 대신해 학교를 가지게 되었다. 상인은 금을 쌓고, 농민은 땅을 일구며 살아갔다. 신분은 철저히 고정되었고, 벗어날 수 없는 틀이 사람을 만들었다.
에도 시대는 겉으로는 봉건이었지만, 속으로는 산업과 도시의 씨앗이 자라나던 시기였다. 오사카와 교토, 에도는 번화한 상업지로 성장했고, 강을 따라 배가 오갔으며, 골목마다 가게가 줄지어 섰다. 화폐 경제가 발달하고, 마쓰리와 가부키, 우키요에 같은 문화는 민중 속에서 피어났다. 귀족의 미학이 아닌, 서민의 정서가 시대의 향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검은 여전히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검은 뽑히지 않았다. 사무라이들은 사무라이의 길을 잊지 않기 위해 검을 찬 채 글을 읽었다. 그들의 분노는 속으로 삼켜졌고, 충성은 현실이 아닌 이상 속에 남겨졌다. 하층 사무라이들의 삶은 점점 곤궁해졌고, 자부심은 곧 고통이 되었다.
막부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교묘한 통치를 이어갔다. 각 번의 다이묘는 ‘산킨코타이’, 즉 1년은 수도에, 1년은 고향에서 살며 가족을 인질로 맡기는 제도를 따라야 했다. 반란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고, 불만은 사라지기보다는 눌려 있었다.
그러한 통제 속에서 250년이라는 시간은 흘렀다. 전쟁 없이 지나간 세기와 반. 그러나 안쪽에서는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배는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외부 세계와의 교류는 막혔다. 쇄국정책. 일본은 자신만의 세계를 굳게 닫고, 조용히 자신의 색을 지켜나갔다.
그러나 태평양 건너에서는 이미 거대한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대포를 단 배, 신의 나라가 아니라 기계의 나라에서 온 사절단. 에도 막부의 질서는 그 발걸음 앞에서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검을 뽑을 수 없는 시대에, 새로운 무기는 총과 증기였다.
에도는 잔잔한 연못 같았다. 평온했고, 정리되어 있었으며,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연못 가장자리에서는 이미 파문이 일고 있었다. 누구도 그것이 해일로 바뀔지 몰랐고, 그것이 250년의 끝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정적 속에서 자란 꽃은 언젠가 시들기 마련이었고, 막부의 질서는 그 시듦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마지막 평화는 그렇게 끝나기 시작했다. 칼을 벽에 걸고 살아온 이들이, 다시 칼을 뽑아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은, 바깥에서 온 문명이라는 이름의 물결이었다.

 

7. 문을 열다 – 흑선과 메이지 유신
굵은 안개가 내륙 깊은 곳까지 밀려들었다. 그 안개는 바닷가의 검은 그림자에서 시작되어, 천천히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수백 년을 굳게 닫았던 문 앞에 이르렀다. 바다는 이전과는 다른 것을 끌어오고 있었고, 일본의 호흡은 그 낯선 파도 앞에서 점차 흐트러졌다.
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이 에도만에 정박했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들어온 그 배는 총포와 조약을 함께 실어왔다. 외부 세계와의 단절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쇄국은 깨졌고, 일본은 선택의 문 앞에 섰다. 싸울 것인가, 열 것인가. 검은 연기는 천하의 대지를 적셨고, 검보다 빠르고, 방패보다 강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에도 막부는 갈팡질팡했다. 몇몇은 끝까지 배를 돌려보내려 했고, 다른 이들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결국 그 문은 열렸다. 불평등 조약이었다. 관세 자율권도, 재판권도 갖지 못한 채, 일본은 서구 열강에게 문을 내주었다. 백성들은 분노했고, 무사들은 주먹을 말없이 움켜쥐었다.
이 개항은 단지 무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관의 전복이었고, 가치의 해체였다. 칼로 지켜온 세상에 총이 들어왔고, 명예로 지탱한 정신에 돈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무라이의 시대는 퇴색해갔고, 농민과 상인은 도시로 몰려들어 산업과 근대의 중심이 되었다.
이때 등장한 이들이 있었다. 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그리고 수많은 젊은 지사들. 그들은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 중심의 정권, 새로운 일본을 꿈꾸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천황은 다시 정권을 회복했고, 이름뿐이었던 존재는 실제의 권력이 되었다. 왕정복고, 그러나 그 본질은 근대화였다.
유신은 혁명이었다. 봉건제를 폐지하고, 사민평등을 선언했다. 구 다이묘의 땅은 국가로 귀속되었고, 신분제는 무너졌다. 그러나 자유는 느리게 도착했고, 새로운 질서는 혼란 속에서 태어났다. 사무라이들은 실직했고, 다이묘들은 은퇴했다. 가장 많이 잃은 이들은 바로, 가장 오래 지켜온 이들이었다.
서구를 본받자는 움직임은 눈부셨다. 군대는 프러시아를, 헌법은 독일을, 교육은 프랑스를, 산업은 영국을 따랐다. 일본은 거울처럼 서양을 비추고, 그것을 자신 안에 담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자기 자신이 점점 흐려졌다. 바꾸지 않으면 살 수 없었고, 바꾸다 보면 잃는 것도 많았다.
그래도 일본은 나아갔다. 철도가 깔렸고, 학교가 세워졌으며,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나라의 이름 아래 집결했다. 근대국가 일본, 그 밑바탕에는 ‘강한 나라, 부유한 백성’이라는 슬로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강함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메이지 유신은 단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수많은 상처와 꿈이 겹쳐 만들어낸 거대한 전환이었다. 그것은 외세의 침입에 대한 절규였고, 내부 모순에 대한 단죄였다. 그리고 일본은 다시 한번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바다 위에 서 있었다.
구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그 너머엔 기계의 숨결이 있었다. 더 이상 검은 연기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제는 그 연기를 내뿜는 쪽이 되려 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문을 열었고, 동시에 과거의 그림자도 함께 내보냈다. 하지만 그 그림자들은, 아직 어딘가에서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헤드라인경제신문 기자 auroraaa@naver.com
Copyright @헤드라인경제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등록번호 : 경기,아53028 | 등록일 : 2021-10-07 | 제호명: 헤드라인 경제신문 | 주소 : 경기도 의정부시 평화로 216번길 13 발행 편집인 : 양세헌 | 전화번호 : 010-3292-7037 Copyright @헤드라인경제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