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에 끝내는 일본사 이야기3

  • 등록 2025.04.20 18: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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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국의 꿈과 전쟁 – 대정~쇼와 초기의 군국주의
먼저 바람이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바다에서 불던 바람이었는데, 이제는 땅속에서 밀고 올라오는 바람이었다. 뿌리에서 시작해 줄기를 흔들고, 나뭇잎 끝을 날카롭게 치며 하늘을 가르는 기세였다. 일본은 다시 한 번 변하고 있었다. 이번엔 꿈을 꾸고 있었고, 그 꿈은 크고, 뜨겁고, 위험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눈부시게 달렸다. 천황제 중심의 국가가 되었고, 교육은 충성을 가르쳤으며, 군대는 국가의 척추가 되었다. 유럽을 좇아 문명을 흡수하던 나라가, 이젠 문명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근대화의 성공은 자신감을 낳았고, 그 자신감은 곧 제국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일본은 승리했다. 동양의 작은 섬나라가 서양 열강을 물리쳤다는 사실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 승리보다 일본을 더 자극한 것은 승리 이후 얻은 ‘위신’이었다.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는 착각, 대륙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다는 확신. 일본은 제국을 꿈꾸기 시작했다.
다이쇼 시대는 짧았다. 쇼와로 넘어가면서 일본은 점점 더 내부를 다잡았다. 언론은 검열되었고, 학교에서는 ‘황국신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주입했다. 천황은 다시 신격화되었고, 정치인은 군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정부가 아니라 군부가 나라를 움직였다.
군국주의는 서서히, 그러나 확고하게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국기를 향해 경례했고, 국민은 ‘천황을 위해’라는 말 아래 평등해졌다. 그 말은 때로는 무서운 단어였다. 죽음을 명령할 수 있었고, 저항을 죄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기 속에는 늘 긴장이 있었다. 말보다 침묵이 많았고, 행동보다 복종이 우선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 일본은 중국 대륙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철도 보호라 했고, 나중엔 자위라 했다. 그러나 본질은 확장이었다. 더 넓은 땅,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백성을 원했다. 그리고 그 끝은 끝이 아니었다. 중일전쟁으로, 다시 진주만으로, 바다는 전쟁터가 되었다. 태평양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전쟁은 국가 전체를 삼켰다. 남자들은 군복을 입었고, 여자들은 군수공장에 갔다. 쌀은 배급되었고, 라디오에서는 승전보가 울렸다. 그러나 전선은 길고, 무기는 부족했고, 하늘에서는 연합군의 폭격기가 날아들었다. 도시가 불타고, 사람들은 지하로 숨었다. 믿음은 흔들렸고, 충성은 고통이 되었다.
군국주의는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었고, 모든 것을 태우는 무언의 강요였다. 전쟁은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 개의 불덩이로 막을 내렸다. 천황은 라디오를 통해 항복을 선언했고,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제국은 그렇게 끝났다. 더 이상 신도, 더 이상 영광도 없었다. 남은 건 잿더미와 허기, 그리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깊은 의문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살아남았다. 제국의 꿈은 무너졌지만, 그 폐허 위에서 다시 사람들은 일어나야 했다.
그것이 이 작은 나라의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문턱이었다. 바람은 멈췄지만, 숨결은 아직 남아 있었다.

 

 9. 폐허에서 기적으로 – 전후 재건과 경제 성장
먼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천황의 육성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라디오를 들으며 마루 위에 앉아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귀를 때리던 포성과 구호가 사라진 자리엔 고요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휴식이 아니라, 깊은 상실이었다.
도시는 부서졌고, 가족은 흩어졌다. 불타버린 집터 위에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국물이 식은 양철그릇을 안고 하루를 버텼다. 지하철은 쓰러진 채 멈춰 있었고, 거리는 구호품을 기다리는 줄로 가득했다. 패전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정치적 의미를 넘어, 한 시대의 정서를 삼켜버렸다.
그러나 일본인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한 줌의 흙을 다시 손으로 모았고, 그 위에 다시 벽돌을 올렸다. 미군정 아래에서 새로운 헌법이 공포되었고, 천황은 신이 아닌 인간으로 내려왔다. 민주주의라는 낯선 옷을 입고, 자유와 평등이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했다. 그 혼란 속에서도 삶은 이어졌다.
재건은 느렸지만 끈질겼다. 작은 공장에서 시작된 손기술은 곧 산업으로 성장했고, 라디오, 자전거, 시계가 하나씩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을마다 도로가 깔리고, 전기가 들어오고, 학교의 종이 다시 울렸다. 희망이라는 말은 아직 어색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품고 걸어갔다.
그리고 1964년,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후의 폐허에서 일어선 일본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선언했다. 신칸센이 도심을 가로지르고, 고속도로가 산과 바다를 넘었다. 흑백 텔레비전은 그 풍경을 전국으로 퍼뜨렸고, 사람들은 스크린을 보며 박수를 쳤다.
그 성장의 중심엔 수출이 있었다.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제품. 일본은 물건을 만들어 세계로 보냈고, 그 물건들은 ‘정밀’과 ‘신뢰’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엔화는 강해졌고, 일본 기업은 세계를 무대로 삼았다.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 그 이름들이 외국 광고판에 걸릴 때마다, 누군가는 속으로 울컥했다. 우리도 할 수 있었노라고.
그러나 그 기적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과로와 희생, 인내와 불평이 억눌린 채 누적되었고, 부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농촌은 텅 비어갔고, 도시는 팽창하며 질서를 잃어갔다. 여성의 자리는 여전히 제한적이었고, 청년은 경쟁에 지쳐 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참는다'고 불렀다. '가만히 견딘다'는 것이 이 나라의 미덕이었고, 그것이 곧 성장의 기둥이 되었다.
그래도 일본은 걷고 있었다. 종전 20년 만에,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고도성장. 그것은 단어가 아니라 실제였다. 바람은 이제 다른 방향으로 불고 있었고, 그 바람 속에서 일본은 미래를 꿈꾸었다. 언젠가 다시,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으리라는.
그러나 그 중심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폐허에서 피어난 꽃은 찬란했지만, 뿌리는 여전히 뜨거운 잿더미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 잿더미 속에는 잊힌 이름들과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10. 오늘의 일본 – 고령화 사회와 문화 강국의 길
가을비처럼 잔잔한 소식들이 이어진다. 누구의 부고, 어느 시골마을의 폐교, 오래된 상점의 마지막 영업일. 사람들은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일본은 지금, 천천히 늙어가고 있다.
전후의 기적은 눈부셨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았다. 고도성장의 끝자락에서 버블이 터졌고, 1990년대 이후는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게 되었다. 경제는 정체했고, 청년은 미래를 잃었으며,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가위를 들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일본은 조용히 버티는 법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인구였다.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고, 고령자는 계속 늘었다. 65세 이상이 인구의 30%에 가까워졌고, 시골에는 젊은이가 사라졌다. 유치원 대신 노인 요양원이 들어섰고, 폐가가 늘어났다. 마을을 지키는 건 더 이상 청년의 팔이 아니라, 백발의 어깨였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 늙어가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자동화, 로봇 기술, 디지털 행정. 그것들은 노동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편이 되었고, ‘소멸하지 않기 위한 지혜’가 되어갔다. 도시 곳곳에는 고령자를 위한 시스템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고, 병원과 간병센터는 효율과 정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문화는 또 다른 자산이 되었다.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J-POP. 젊은 세대가 줄어드는 현실과는 별개로, 일본의 문화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 닿았다. 지브리의 장면은 파리의 아이들도 기억하고, ‘스즈메’의 노래는 브라질의 밤하늘에서도 들렸다. 일본은 기술이 아닌 감성으로 세계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이제 일본은 ‘강한 나라’보다는 ‘깊은 나라’로 자리 잡으려 한다. 숫자보다는 품질, 확장보다는 정제. 오래된 마을을 지키고, 다다미 방을 되살리고, 천천히 말 걸듯 커피를 내리는 가게들이 세계인의 발길을 붙든다. 그 속에는 일본이 축적해온 정서와 인내, 절제와 품격이 스며 있다.
정치는 여전히 보수적이고, 사회는 아직 답답하지만, 일본은 스스로를 소란스럽게 바꾸지 않는다. 변화를 일으키기보다는 감싸고 다독이며, 그 안에서 천천히 새로운 방향을 찾는다. 그것이 일본이 선택한 방식이고, 그것이 지금의 일본을 만들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청년의 일자리, 여성의 사회 참여, 지역의 소멸, 국제 정세 속의 외교적 균형. 그러나 일본은 그것마저도 조용히 이야기한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고, 뿌리 깊은 나무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오늘의 일본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세계 어디에서든, 조용히 곁에 머물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그것은 야망이 아니라 성찰이며, 전진이 아니라 균형이다. 그렇게 일본은 또 하나의 긴 밤을 준비하며, 등불 하나를 창가에 걸어둔다.
그 불빛은 세지 않다. 그러나 오래간다. 일본이라는 섬의 현재는, 바로 그 오래가는 불빛 속에 있다.

 

11. 맺음말 – ‘일본다움’이라는 물음
겨울의 끝자락, 눈은 그쳤지만 길 위엔 아직 얼음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걷고, 누군가는 그 길에 소금을 뿌렸다. 조용하고,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녹아가는 시간. 지금의 일본은 그런 시기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천황의 나라에서 시작해, 무사의 시대를 지나, 제국을 꿈꾸고, 전쟁을 겪고, 그 폐허에서 다시 일어난 이 나라는 오늘도 사람의 손으로 움직이고 있다. 다이묘와 쇼군, 학자와 농부, 상인과 예술가,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남긴 숨결은 바람을 타고, 지금의 골목과 학교, 절과 시장 속에 스며 있다.
‘일본다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가부키의 화장이나 사무라이의 칼이 아닐 것이다. 더 오래, 더 넓게 뿌리내린 어떤 태도, 자세, 결심. 남들이 소리 지를 때 조용히 등을 돌리는 일. 이기기보다 지지 않기를 택하는 마음. 정답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한 방향을 가리키는 눈빛.
이 나라는 늘 혼자였고, 동시에 함께였다. 바다로 둘러싸였지만, 바다를 건너 외부와 소통했다. 외세를 거부하면서도, 그 문명을 빨아들여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했다. 그것은 배타가 아니라 자기 확신이었고, 모방이 아니라 흡수였다. 일본다움은 그 조용한 혼합 속에서 피어난 낯선 꽃이었다.
역사는 곧 사라지는 사람들의 발자국이다. 그리고 일본의 발자국은, 비에 젖은 흙 위에 남겨진 그것처럼 오래 남는다. 서두르지 않고, 뚜렷하지도 않지만, 그 자리에 다시 눈을 돌리면 반드시 거기 있다. 그것이 이 나라가 지닌 지속의 힘이다.
우리는 일본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이해하지 못한 채 바라보는 쪽이 더 적절한 위치일까. 일본은 설명보다는 관찰을 요구하는 나라이며, 해석보다 경청을 유도하는 이야기다. 그들이 남긴 모든 시간은, 지금도 조용히 흐르고 있다. 벚꽃 아래에서, 아침의 지하철 안에서, 붓글씨 연습지 위에서.
이 글은 다만 그 흐름의 자락을 쥐어본 흔적에 불과하다. 바람은 이미 지나갔고, 우리는 그 바람이 남긴 흔적을 따라 걸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흔적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날 것이다.
 

헤드라인경제신문 기자 auroraa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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