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에 끝내는 러시아사 이야기2

  • 등록 2025.05.25 20: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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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피터 대제: 유럽을 향한 창
러시아는 오랫동안 자신이 유럽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한 나라였다.
서쪽 국경을 넘어서면 독일, 폴란드, 스웨덴과 마주쳤지만,
삶의 방식은 유럽과 달랐다. 언어도, 법도, 복장도, 심지어 시간 감각도 달랐다.
그런 러시아에 단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유럽을 꿈꾸지 않았다. 유럽을 직접 수입하려 했다.
그 이름은 피터 대제(Peter the Great).

 

피터는 어린 시절부터 서양 문물에 매혹됐다.
하지만 단순히 궁정에서 유럽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왕위에 있으면서도 가명을 쓰고 유럽을 직접 돌아다녔다.
배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조선소 인부로 위장 취업했고,
네덜란드에선 목수들과 함께 배를 만들었으며, 영국에선 군사 훈련까지 직접 참관했다.
단지 흥미로 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 전체를 ‘다시 설계’하고자 했다.

 

1703년, 그는 진흙과 늪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그 이름은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그 도시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다.
“이곳은 유럽을 향한 창이다.”
피터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유럽을 향한 창은, 동시에 러시아인들의 등을 향한 칼날이 되었다.

 

그는 유럽식 옷을 강제로 입히고, 귀족들의 수염을 자르게 했다.
수염은 당시 정교회 문화에서 남성성과 신앙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피터는 말했다. “그건 낡았다.”
그는 문화를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문화가 아니라 삶의 리듬 자체를 유럽식으로 교체했다.

 

시간을 유럽식으로 개정하고, 관료제도를 재설계하고, 심지어 귀족 계급도 국가에 봉사한 순위에 따라 재편했다.
기존 귀족은 더 이상 ‘혈통’이 아니라 ‘충성’으로 계급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근대화란 무엇인가?”
피터는 말한다.
“근대화란 기술의 수입이 아니라, 복종의 재설계다.”

 

그는 러시아를 유럽식 제국으로 바꾸었지만,
그 방식은 유럽보다 훨씬 더 중앙집권적이고, 전체주의적이었다.
그는 유럽을 닮았지만, 유럽보다 더 무서운 유럽이 되었다.

 

결국 피터의 유럽은 기술과 군함, 옷차림과 수도에만 머물렀다.
민중의 삶과 내면의 질서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후 몇 세기 동안도 여전히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아니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고립된 섬인가?

 

피터 대제는 창을 열었지만, 창 너머로 들어온 것은 바람과 빛이 아니라
자기모순과 열등감, 그리고 새로운 제국의 욕망이었다.

 


5장
제국은 확대된다: 예카테리나 2세와 민족의 덫

 

러시아는 가만히 있는 법이 없는 나라였다.
누군가 다가오면 방어했고, 침묵이 흐르면 침입했다.
그 중심에, 한 여인이 있었다.
예카테리나 2세. 서구에선 캐서린 대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여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러시아인이 아니었다.
독일 태생에, 러시아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황후로 즉위하자마자, 그녀는 러시아를 누구보다 러시아답게 만들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를 러시아보다 더 큰 나라로 만들고자 했다.

 

예카테리나의 목표는 명확했다. 유럽이 인정하는 제국.
그녀는 계몽사상을 좋아했고, 볼테르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계몽군주라 불렀고, 법과 교육, 행정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하지만 그 계몽은 늘 경계선을 넘지 않았다.
귀족의 특권은 보장되었고, 농노는 여전히 땅에 묶여 있었다.

 

그녀의 진짜 계몽은 칼과 지도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흑해를 향해 남하했고, 폴란드를 분할해 삼켰으며, 우크라이나, 발트 해 연안, 크림반도까지 흡수했다.
그 확장은 단순한 영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민족, 언어, 문화, 종교를 함께 안고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러시아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의 콜라주가 되어갔다.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유대인, 발트계, 타타르인.
이들은 러시아 제국 안에 포함되었지만, 결코 하나가 되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러시아는 한 가지 딜레마를 안고 간다.

 

제국은 확장에 성공했지만, 정체성은 오히려 약해졌다.
러시아는 ‘누구인가’에서 ‘누구까지 포함할 것인가’로 질문이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민족의 덫이었다.

 

러시아는 자신을 하나의 민족국가로 정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안엔 수십 개의 민족이 있었고, 그들 각자는 자신이 중심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민족을 흡수하지 않고, 관리하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카테리나 시대에 시작된 유대인 문제다.
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유대인 인구를 품게 됐고,
이를 ‘유대인 거주 제한 구역’이라는 이름 아래 공간과 경제 활동으로 분리했다.
이는 이후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유대인 박해, 푸그롬, 그리고 유럽 전역의 반유대주의로 이어지는 초석이 되었다.

 

확장의 대가는 항상 내부 갈등이었다.
제국은 영토를 삼켰지만, 문화는 소화하지 못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더욱 강해졌지만 동시에 더 불안해졌다.

 

예카테리나는 권력과 교양, 군사와 문화의 균형을 꿈꿨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남긴 것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러시아는 어디까지 러시아인가?

 

이 질문은 제국의 확장보다 오래 남았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대답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6장
황제 없는 제국: 혁명과 붉은 대지

 

1917년, 러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나라였지만, 가장 위태로운 사회이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외형은 황금 갑옷을 입었지만, 속은 썩은 나무 같은 제국이었다.

 

전쟁은 그 썩은 틈을 벌리는 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는 유럽을 지키는 전방의 방패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방패는 전선에서만 작동했고, 후방에서는 굶주림과 분노가 쌓였다.
농민은 더 이상 땅을 믿지 않았고, 병사는 더 이상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모두가 무언가를 원했지만,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던 시절.
바로 그때, 혁명이 찾아왔다.

 

1917년 2월. 차르는 퇴위했다.
300년을 지탱한 로마노프 왕조는 마치 바람에 꺾인 나무처럼 쓰러졌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황제가 사라졌는데도, 사람들은 더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러시아는 해방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

 

새롭게 들어선 임시정부는 유약했다.
개혁을 말했지만, 실천은 없었다.
그 순간, 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빵을 주겠다. 평화를 가져오겠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넘기겠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었다.

 

그는 단순한 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러시아식으로 번역한 사람,
그리고 그 이론을 현실로 만든 유일한 인물이었다.

 

1917년 10월, 두 번째 혁명이 일어난다.
임시정부는 무너지고,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한다.
하지만 그 권력은 단단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바로 내전에 빠져든다.
붉은 군대와 백군, 농민과 귀족, 외세와 민병대가 서로를 향해 총을 들었다.

 

이 시기, 러시아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사람들은 땅을 나누고, 공장을 점거하고, 사유재산을 폐지했다.
모두가 평등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혁명은 이상을 말했지만, 이상은 곧 배고픔과 공포로 바뀌었다.

 

레닌은 말한다.
“자유는 부르주아의 가면일 뿐이다.”
그의 정치는 자유 대신 통제를, 인간 대신 시스템을 우선시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 손에 쥔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은 조셉 스탈린.
그는 레닌보다 말이 적었고, 훨씬 더 오래 살아남았다.

 

레닌의 죽음과 함께 러시아는 다시 변화한다.
이제는 혁명의 나라가 아니라, 국가 자체가 혁명이 되는 시절.
모든 것이 계획되고, 측정되며, 통제된다.
그것은 인간의 해방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였다.

 

1917년은 단지 체제의 전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한 나라 전체가
새로운 인간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움직인 해였다.

 

그리고 그 실험의 결과는 곧,
공포와 희생, 질서와 잔혹함이 혼재된 또 하나의 제국이었다.

 


7장
붉은 제국의 꿈: 스탈린과 전체주의

 

20세기 초, 러시아는 스스로를 인류의 미래라 선언했다.
가난한 농민도, 글을 모르는 노동자도, 모두가 국가의 주인이 되는 세상.
레닌이 그 문을 열었고, 스탈린은 그 문을 잠갔다.

 

스탈린은 말이 적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강철 같은 의지가 있었다.
그는 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관리자였고, 조직가였으며, 인간의 감정보다 시스템의 질서를 믿는 인물이었다.

 

그는 권력을 장악한 뒤, 하나의 거대한 계획을 시작한다.
바로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의 실험이다.
목표는 단순했다.
한 세대 안에 러시아를 유럽보다 강한 공업국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 방법도 단순했다.
사람들을 동원하라. 땅을 수용하라. 공장을 세우라.
이 모든 것을 국가가 직접 통제한다.
즉, 인간은 더 이상 삶의 주체가 아니라, 계획의 부속품이 된다.

 

문제는 그것이 단지 경제 정책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는 이념의 무기화였다는 것이다.

 

정치적 반대자는 존재할 수 없었다.
심지어 반대하지 않아도, 충분히 열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숙청당했다.
고발은 의무였고, 침묵은 반역이 되었다.

 

1930년대, 스탈린은 대숙청을 시작한다.
군 장성, 지식인, 당 간부, 예술가, 심지어 농민 지도자까지.
자신이 만든 체제를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이들이
“당신은 반혁명분자입니다”라는 한 문장에 의해 사라졌다.

 

이 시기, 소련에는 하루 평균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어떤 이들은 시베리아로 보내졌고,
어떤 이들은 새벽녘 지하실에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총에 맞았다.

 

공포는 개인의 심장을 얼게 만들었고,
그 공포는 역설적으로 체제를 강화하는 연료가 되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단지 처형자만은 아니었다.
그는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러시아를 다시 한 번 ‘구원자’의 위치로 끌어올린다.

 

1941년,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을 때,
러시아는 처음엔 무너졌지만, 곧 버텼고, 결국 이겼다.

 

레닌은 혁명을 설계했고,
스탈린은 생존을 설계했다.
그 설계 안에는 자유도, 개인도, 사랑도 없었다.
오직 명령과 충성, 그리고 희생만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시스템은 작동했다.
거대한 철도, 군수 공장, 핵무기, 우주 개발.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 성장의 이면에는 항상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만약 인간이 단지 효율을 위한 존재라면,
그는 여전히 인간일까?”

 

이 질문은 스탈린이 말하지 않았고,
러시아인들은 대답할 기회조차 없었다.

 

공포는 늘 침묵보다 먼저 도착했으니까.
 

헤드라인경제신문 기자 auroraa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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