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에 끝내는 영국사 이야기3

  • 등록 2025.07.31 00: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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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청교도 혁명과 왕의 처형 – 권력의 얼굴을 바꾸다
1649년 1월 30일, 런던의 추운 겨울 아침. 찰스 1세가 단두대로 향했다. 군중은 침묵했고, 군인들의 창끝은 긴장처럼 날카로웠다. 그리고 그 순간, 세계는 알지 못한 채 한 경계를 넘었다. 인간이 신의 이름으로 세운 왕을, 인간이 다시 법의 이름으로 처형한 것이다.
청교도 혁명, 또는 잉글랜드 내전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의 정체에 대한 질문이었다. 왕은 누구의 대리자인가? 신인가, 국민인가? 수백 년 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왕권신수설은 이 질문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찰스 1세는 스스로를 절대군주로 여겼고, 신의 권위로 세금을 걷고, 의회를 무시했으며,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왜?’
청교도들은 단지 종교적 신념의 공동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국가의 질서를 바꾸고자 한 이념의 실천가들이었다. 그들의 이상은 간단했다. “신 앞에 평등한 인간은, 법 앞에서도 평등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결국 “왕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급진적 결론으로 이어진다.
1642년, 내전이 시작되었다. 왕당파와 의회파가 충돌했고, 나라는 둘로 갈라졌다. 전쟁은 단지 군사 충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체성의 싸움이었다. “우리는 누구의 백성인가?”라는 질문이 검과 총 위로 떠올랐다. 전쟁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피는 생각보다 많이 흘렀다. 그러나 끝이 왔을 때, 국민은 왕보다 강해져 있었다.
왕의 처형은 신화의 붕괴였다. 단두대에 머리를 올린 왕은, 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첫 권력자였다. 그날의 단두대는 단지 한 사람의 생명을 끊은 것이 아니라, 수천 년간 이어져온 권력의 이미지 자체를 절단해버렸다. 왕은 더 이상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책임져야 할 인간이었다.
이후 올리버 크롬웰은 군사 독재자이자 공화국의 수장이 되었지만, 그의 존재는 새로운 역설을 낳았다.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또 다른 권위에 복종하는 아이러니. 왕을 베어낸 자리에, 군이 대신 들어선 것이다. 이는 인간 사회가 한 단계를 건너뛰고 싶어도, 결국 또 다른 권위를 만들고야 만다는 본능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에서 처음으로 한 가지 사실이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왕도 법 앞에서 무력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조건이었다. 처형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시작이었다. 인간이 인간의 권력을 정의하려 한 최초의 실험.
혁명은 실패했을지 몰라도, 사상은 살아남았다. 이후 복원된 왕정도 과거와 같을 수는 없었다. 왕은 다시 즉위했지만, 더 이상 이전처럼 독재할 수는 없었다. 사회는 이미 ‘권력은 제한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 생각은 이후 권리장전과 의회제도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찰스 1세의 피는 땅에 스며들었지만, 그 피로 씌어진 문장은 오히려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권력은 신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 동의한 약속이라는 것. 그 약속을 어긴 자는, 왕이라도 책임져야 한다는 것.
청교도 혁명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문명의 사춘기였다.

 

제9장. 산업혁명과 도시의 탄생 – 석탄, 기계, 인간의 재조립
어느 날, 인간은 불을 땅에서 꺼냈다. 그것은 성냥불이나 모닥불이 아니라, 석탄이었다. 수천만 년 전의 태양 에너지가 땅속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18세기 영국에서 그것은 마침내 깨어났다. 이 새로운 불은 식사를 데우는 용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불이었다.
산업혁명은 기계와 공장, 굴뚝과 증기로 상징된다. 그러나 그 본질은 인간의 삶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구성’했다는 데 있다. 증기기관은 단지 동력의 혁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쪼개고, 노동을 측정하며, 인간을 기계의 부속으로 만든 혁명이었다.
과거의 노동은 계절에 따라 움직였다. 해가 뜨면 일하고, 지면 멈췄다. 그러나 기계는 해가 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노동자는 이제 ‘사람’이 아니라 ‘에너지 단위’가 되었다. 하루 12시간, 또는 16시간의 일과는 더 이상 인간의 한계를 기준으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기계의 리듬이었다.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 도시들은 더 이상 왕의 궁전이나 교회의 중심이 아니었다. 이제는 공장과 노동자의 거주지로 뒤덮인 공간이 되었다. 도시화는 단지 공간의 재배치가 아니라, 인간 관계의 재편이었다.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가족은 해체되었으며, 노동자들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채 컨베이어벨트의 반대편에서 하루를 마쳤다.
이 변화는 단지 기술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철학적이었다. 인간은 이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강을 막고, 산을 파고, 밤을 전기로 환하게 밝혀놓았다. 그러나 대가도 따랐다. 환경은 파괴되었고, 노동자는 기계에 지배당했으며, 어린이조차 일터에 끌려나왔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자유를 확대시킨 동시에, 새로운 억압을 만들어냈다. 빈민굴과 스모그, 기계에 끼어 사망하는 노동자의 기록. 그러나 한편으론 의료기술, 대중교통, 문맹 퇴치 같은 전례 없는 진보도 시작되었다. 삶은 고통스러워졌지만, 동시에 가능성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새로운 계급이 태어났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즉, 자본을 가진 자와 노동을 파는 자. 그것은 단지 경제 구조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를 정의하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이제 신분이 아니라 월급이, 가문이 아니라 생산성이 인간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전환의 한복판에서, 가장 묘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통계는 수명을 늘리고, 소득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만든 기계에 끊임없이 밀려났다. 휴식은 짧아졌고, 관계는 단절되었으며, 정신은 피로했다. 마치 진보라는 이름의 열차는 종착지를 잊은 채 달려가는 것처럼.
영국은 이 혁명을 전 세계로 수출했다. 식민지에도, 신대륙에도, 아시아의 조선소와 인도네시아의 고무 농장까지. 산업은 국경을 넘었고, 탄소는 대기를 뒤덮었다. 이 혁명은 단지 영국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 전체의 것이 되었고, 동시에 인류 전체의 숙제가 되었다.
결국, 산업혁명은 묻고 있다.
"더 빨라진 우리가,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도, 우리가 멈추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10장. 대영제국의 절정과 해체 – 바다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1900년대 초, 세계 지도의 4분의 1이 붉게 칠해져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상징적인 문장이었다. 영국은 단지 하나의 섬나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이었다. 언어, 철도, 차 문화까지도 그 확장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 붉은 색은 결코 평화롭게 물든 것이 아니었다.
제국의 팽창은 무역의 이름으로, 문명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은 침탈이었다. 인도의 면직물 산업은 파괴되었고, 아프리카의 자원은 약탈당했으며, 홍콩은 아편전쟁의 결과로 강탈되었다. 영국은 총과 조약, 그리고 교묘한 경제 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지배했다. 제국의 논리는 명료했다. "우리가 만든 질서가, 너희의 혼란보다 낫다."
그러나 제국은 이상하게도, 자신이 세운 질서에 잡아먹히기 시작했다. 식민지의 자원은 영국을 부유하게 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관리, 더 많은 군대, 더 많은 통제를 요구했다. 그리고 바로 그 관리와 통제의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반란의 불씨가 되었다. 억압된 자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게 되어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영국의 힘을 갉아먹었다. 물리적인 군사력만이 아니었다. 제국을 정당화하던 도덕적 신화가 무너졌던 것이다. 인도는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으로 독립을 향했고, 아프리카 각국은 제국의 가장자리를 무너뜨리며 자주성을 외쳤다. 영국의 지도자들은 이해하기 시작했다. 권력은 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당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해체는 격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서히, 조용히, 그러나 되돌릴 수 없이 진행되었다. 식민지들은 독립했고, 영국 본토는 점점 좁아졌다. 그러나 제국은 단지 땅이 아니라, 사고방식이었다. 해가 졌을 때, 영국인들이 잃어버린 것은 지도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체성의 중심을 잃었다.
오늘날의 런던은 세계의 축소판이다. 전 식민지 출신의 사람들이 거리마다 살아간다. 그들의 언어와 음식, 종교와 습관은 런던을 다채롭게 만든다. 그러나 이 공존은 단순하지 않다. 과거의 지배자가 오늘날의 다문화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책임의 문제다. 바다는 기억하고 있다. 수백 년간 제국의 깃발을 실어 나르던 바다. 그것은 침묵하지 않는다.
대영제국의 유산은 오늘도 살아 있다. 영연방이라는 이름으로, 영어라는 언어로, 국제 금융과 스포츠의 규칙 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그 유산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그 힘은 누구를 위해 쓰였는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제국의 종말은 예외다. 대영제국은 승리한 채로 몰락했다. 패배에 무릎 꿇은 것이 아니라, 시대에 지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침은, 인류 전체에게 다음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다시 그런 제국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될 것인가?”
결국 제국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남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바다처럼, 한없이 넓고 깊으며, 가끔은 조용히 밀려와 우리 발목을 적신다.
 

헤드라인경제신문 기자 auroraa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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