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은 새로운 시민단체인가

  • 등록 2025.09.21 11: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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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문화에서 팬덤은 더 이상 단순한 소비 집단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과거 팬덤이 스타의 음반을 사고, 공연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보여주는 데 머물렀다면 이제는 사회적 현안을 움직이고, 자발적인 모금과 캠페인을 이끄는 거대한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취향 공동체의 확대가 아니라, 시민단체에 버금가는 사회적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기부 문화다. 특정 연예인의 생일이나 데뷔일에는 팬들이 모여 대규모 기부를 진행하는 일이 흔해졌다. 단순히 쌀 화환을 보내던 차원을 넘어, 장애인 시설 지원, 아동 복지 기금, 해외 재난 성금 모금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는 개인의 호감 표현이 집단적 실천으로 이어지며,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확산시키는 과정이다. 팬덤이 곧 사회적 나눔의 통로가 된 셈이다.

 

또한 환경 보호나 인권 문제 같은 사회적 캠페인에서도 팬덤은 적극적이다. 예컨대 아이돌 팬덤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나무를 심는 캠페인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거나, 특정 사회적 이슈와 연계해 기부를 집행하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주체가 개별 스타가 아니라 팬덤 스스로라는 사실이다. 스타의 이미지를 지키고 확장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팬덤이 하나의 자발적 시민 네트워크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특정 팬덤이 사회운동을 넘어 정치적 메시지를 내는 경우, 연예인 개인에게 부담이 전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대중이 형성한 거대한 공동체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적 통로이기도 하다. 팬덤은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의견을 모으고, 빠른 속도로 실행에 옮기는 조직력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시민단체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와 동원력을 갖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힘은 언제나 긍정적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팬덤 내부의 과도한 경쟁이나 배타성은 또 다른 갈등을 낳기도 한다. 기부와 사회활동이 ‘숫자 경쟁’으로 흐를 때, 본래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또한 스타와 무관하게 팬덤의 행동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올 경우,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도 모호하다. 결국 시민단체로서의 성격과 팬덤으로서의 본질 사이에는 여전히 긴장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팬덤 문화는 분명히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과거 팬덤이 ‘팬심’으로만 해석되던 시대에서, 지금은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집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기존 시민단체와 달리 자발성과 유연성, 빠른 실행력을 무기로 삼는다. 팬덤은 스타를 중심으로 모였지만, 점차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다시 조직화되고 있다.

 

AI 시대에 언론이 약화되고, 전통적인 시민단체가 동원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팬덤은 의외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팬덤이 모인 힘은 더 이상 단순한 문화적 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기부와 캠페인, 사회운동이라는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지고, 결국 하나의 사회적 자본이 된다. 따라서 팬덤은 이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단순한 팬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시민인가”. 이 물음은 한국 사회가 팬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함께 성장시킬 것인가라는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터넷과 SNS가 제공한 연결망 위에서 팬덤은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사회적 행동을 수행하며, 새로운 공적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아직은 과도기적 단계이지만, 한국의 팬덤은 이미 시민단체와 유사한 사회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팬덤은 ‘문화적 집단’에서 ‘사회적 주체’로 진화하는 중이며, 그 여정은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과 더불어 앞으로도 계속 주목받게 될 것이다.

헤드라인경제신문 기자 auroraa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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