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시장의 시계가 느려지고 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60세 언저리에서 멈춘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 100세 시대라는데, 60세 이후는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그렇게 ‘정년연장’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든다. 정치권에서는 공약으로, 기업은 부담으로, 청년층은 불안으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이 주제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의 생존감각이 충돌하는 문제다.
한국의 법정 정년은 60세다.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개정으로 정년 60세가 의무화된 지 이제 겨우 10년 남짓. 그사이 기대수명은 83세를 넘어섰고, 은퇴 이후의 삶은 20년이 넘는 새로운 생애주기가 됐다. 문제는 이 20년이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생계와 존엄이 걸린 시간이라는 것이다. 물가가 치솟고, 퇴직금과 연금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많은 이들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정년연장에 찬성하는 쪽의 논리는 단순하다. 늙었다고 해서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의료 기술과 건강 수준이 크게 향상된 지금, 60세는 더 이상 노년이 아니다. 오히려 경륜과 경험을 가진 인력의 조기 퇴출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낮춘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이나 독일처럼 65세 이상 고령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이미 70세 고용을 유도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며, 독일은 아예 퇴직 연령을 단계적으로 올리고 있다. 한국이 이 흐름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년연장은 단순히 ‘일할 권리’를 넘어 ‘일할 필요’의 문제다. 202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0세 이상 근로자의 70%가 ‘생계유지’를 위해 일한다고 답했다. 은퇴 후에도 대다수는 생활비가 부족하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자녀세대의 부양 여력은 줄었다. 결국 정년을 늘리는 것은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급속히 늙어가는 사회가 감당해야 할 구조적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세대 간의 일자리 경쟁이다. 청년층은 이미 ‘취업절벽’이라는 말로 불리는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장년층의 자리가 유지되면, 청년의 진입은 더 좁아진다. 한정된 자리를 놓고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경우, 정년이 연장되면 신규 채용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기업의 부담도 현실적인 문제다. 정년연장은 단순히 근로자의 연령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인건비 구조가 함께 달라져야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유지된다면, 기업은 버티기 어렵다. 그래서 재계는 “정년연장 논의 전에 임금체계 개편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임금체계 개편은 노동계의 강한 저항을 불러온다. 한쪽의 생존 논리가 다른 쪽의 생존 논리를 밀어내는 딜레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퇴직 이후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명목상 정년은 60세지만, 실제 현장에서 많은 기업은 50대 초반부터 희망퇴직을 권한다. 이미 조기퇴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법적 정년을 늘린다고 해도 실질적인 고용이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정년연장이 현실이 되려면, 단순한 연령 제한 완화가 아니라 근로 형태 자체의 유연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시간제, 프로젝트형, 재고용제도 같은 다양한 형태의 ‘활동적 노년’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청년층의 불안을 외면할 수도 없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자리 지키기’로 정년연장을 본다. 20대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몇 년째 고착된 고용 구조가 더 단단해질 뿐이다. 이 갈등의 본질은 단순히 일자리 숫자가 아니라 ‘기회의 불균형’이다. 젊은 세대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년연장과 동시에 세대 간 전환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일정 나이 이상의 근로자는 단계적으로 업무를 줄이고,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세대공존형 일자리 모델’이 필요하다.
결국 정년연장은 선택이 아니라 준비의 문제다. 사회 전체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제도로 연결할지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나이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해답이 없다.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연공서열 대신 성과 중심의 시스템으로 전환하며, 고령층과 청년층이 공존할 수 있는 노동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년연장은 세대 간의 싸움이 아니라 ‘함께 오래 일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된다.
한국은 이미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다. 2025년이면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 된다. 하지만 제도와 인식은 여전히 40년 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젊은 세대는 불안하고, 노년 세대는 불만스럽다. 이런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누가 더 오래 일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느냐’에 대한 대답이다.
정년연장은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느냐의 문제다. 세대 간 양보와 균형, 그리고 제도의 유연성이 어우러질 때만이 이 논쟁은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되, 새로 들어올 세대의 문을 닫지 않는 지혜. 그것이 인생 100세 시대의 진짜 정년연장이다.
정년연장은 한쪽의 생존이 다른 쪽의 희생이 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오래 일하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