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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춘의 심장은 왜 청진기를 택했는가

 

“너는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에 “의사요”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대화다. 초등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부모가 원하는 직업도, 아이가 꿈꾸는 미래도 하나로 향하고 있다. 의사.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진기는 이제 단순한 의료 도구가 아니라, ‘안전한 미래’의 상징이 되었다.

 

의대에 대한 열망은 어느새 특별한 직업 선호를 넘어선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입시의 정점에는 언제나 의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과학기술 특성화대학들조차 ‘의대 입시를 위한 백업’으로 여겨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KAIST에 합격한 학생이 자퇴 후 재수를 선택하고, 포스텍 입학생이 수업 도중 “내 길이 아니에요”라며 교정을 떠나는 일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청년들이 말한다. 의사만큼 미래가 확실한 길은 없다고. 변하지 않는 고수익, 사회적 존경, 무엇보다도 불확실한 시대에 누릴 수 있는 ‘보장된 안정성’이 그들을 의대로 몰아간다.

 

이러한 의대 열풍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 인력의 질적 향상은 결국 국민의 건강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군에 최상위권 인재가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특히,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선 장기간의 노력과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의 헌신과 책임감 있는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보상 체계 또한 확실하여 투자한 시간과 비용만큼의 결과를 얻는 구조 역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열풍이 지나치다는 데 있다. 과학과 기술, 예술과 철학, 다양한 분야에 흥미와 재능을 지닌 학생들조차 ‘일단 의대’로 몰리는 현상은 결국 한국 사회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갉아먹고 있다. 단기적인 안정성과 명확한 수익구조만을 좇는 진로 선택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은 설 자리를 잃는다. 현재 과학기술 특성화대학들은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입학 이후 중도 포기자들도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입시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가치 기준’이 협소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의대 입시는 점점 더 계층 간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단순히 성적만으로 입학이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조기 사교육, 고액 과외, 지역 격차 등 다양한 배경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결국 ‘의사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이상은 현실에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도록 사회가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모순으로 귀결된다. 상위 계층이 교육 자본으로 상위직업을 독점하고, 중하위 계층은 점점 더 불안정한 선택지 속에서 경쟁하게 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가 그나마 일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단순히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오히려 지역 간, 대학 간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고, 의료의 질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수치상의 조정보다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접근이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가치의 다양화’이다. 과학자도 되고 싶고, 작가도 되고 싶고, 로봇을 만들고 싶은 아이들이 의사가 되는 것 외에도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직업 구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직업군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존중. 초중등 교육부터 이러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시스템과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공계열을 포함한 기초학문 전공자들이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설계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와 기업이 함께 나서야 한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의대 열풍은 그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모든 길이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정답만 있는 사회는 질문을 잃는다. 그리고 질문을 잃은 사회는 미래를 잃는다. 더 많은 청년들이 다양한 가능성 위에서 고민하고, 다양한 길을 실험할 수 있는 나라. 그곳에서 의사는 수많은 좋은 길 중 하나로 존재해야 한다. 지금은 그 변화의 방향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