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냉전: 얼음 속의 열기 1945년, 세계는 새로운 전쟁을 맞이했다. 이번엔 총소리도, 전선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매일 아침, 핵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눈을 떴다. 이것이 바로 냉전이었다. 뜨거운 이념의 대결이 얼음처럼 조용히 진행된 전쟁. 소련은 이제 더 이상 혁명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반파시즘의 승리자’, ‘노동자의 낙원’, 그리고 ‘세계 질서의 또 다른 축’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축을 맞이한 상대는 미국이었다. 양국은 서로를 바라보며, 거울을 들이댔다. 그러나 그 거울 속엔 항상 왜곡된 자화상만 비췄다. 자신은 정의고, 상대는 악이었다. 냉전의 본질은 두려움이었다. 단순한 군사력의 대결이 아니라, 미래를 선점하려는 전쟁. 소련은 말한다. “우리는 인류의 진보를 대표한다.” 미국은 응수한다. “우리는 자유의 수호자다.” 이 말싸움은 곧, 로켓으로 이어졌다. 1957년, 소련은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린다. 이 작은 금속 공은 소련의 과학력, 체제의 우월성, 그리고 서구 세계에 대한 조용한 경고였다. 그 순간, 세계는 러시아가 단순한 강대국이 아니라, 우주를 향해 손을 뻗는 존재가 되었음
4장 피터 대제: 유럽을 향한 창 러시아는 오랫동안 자신이 유럽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한 나라였다. 서쪽 국경을 넘어서면 독일, 폴란드, 스웨덴과 마주쳤지만, 삶의 방식은 유럽과 달랐다. 언어도, 법도, 복장도, 심지어 시간 감각도 달랐다. 그런 러시아에 단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유럽을 꿈꾸지 않았다. 유럽을 직접 수입하려 했다. 그 이름은 피터 대제(Peter the Great). 피터는 어린 시절부터 서양 문물에 매혹됐다. 하지만 단순히 궁정에서 유럽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왕위에 있으면서도 가명을 쓰고 유럽을 직접 돌아다녔다. 배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조선소 인부로 위장 취업했고, 네덜란드에선 목수들과 함께 배를 만들었으며, 영국에선 군사 훈련까지 직접 참관했다. 단지 흥미로 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 전체를 ‘다시 설계’하고자 했다. 1703년, 그는 진흙과 늪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그 이름은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그 도시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다. “이곳은 유럽을 향한 창이다.” 피터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유럽을 향한 창은, 동시에 러시아인들의 등을 향한 칼날이 되었다. 그는 유럽
서막 시베리아의 설원에서, 인류사의 한복판까지 러시아를 이해하려면, 지도를 거꾸로 봐야 한다. 흔히들 유럽의 끝자락에 붙은 커다란 나라로 보지만, 실제로는 유럽이 러시아의 한 모서리에 끼워져 있는 것이다. 남한의 170배가 넘는 면적, 인간이 살기 힘든 혹한과 침묵의 땅. 이곳에서 제국은 태어났다. 흥미로운 건, 이 제국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왔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는 곧 정체성의 역사다. 그들은 한 번도 '러시아인답게'만 살아보지 못했다. 처음엔 바이킹이었고, 그다음은 몽골의 속국이었다. 정교회를 받아들이면서는 비잔틴의 후계자라는 환상을 가졌고,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자 유럽인과 경쟁하려 했다. 스탈린 시대에는 '공산주의 인류'로 자신을 정의했으며, 오늘날 푸틴의 러시아는 또다시 제국의 망령을 꺼내들고 있다. 러시아는 마치 끊임없이 다른 옷을 갈아입는 배우 같다. 무대는 바뀌지 않는데, 주인공의 분장은 늘 달라진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다. “왜 러시아는 늘 제국이 되려 했는가?” “왜 러시아인들은 권력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숭배했는가?” 그리고, “그들에게 국가는 어디까지가 보호자이고 어디까지가 감시자인가?” 이
8. 제국의 꿈과 전쟁 – 대정~쇼와 초기의 군국주의 먼저 바람이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바다에서 불던 바람이었는데, 이제는 땅속에서 밀고 올라오는 바람이었다. 뿌리에서 시작해 줄기를 흔들고, 나뭇잎 끝을 날카롭게 치며 하늘을 가르는 기세였다. 일본은 다시 한 번 변하고 있었다. 이번엔 꿈을 꾸고 있었고, 그 꿈은 크고, 뜨겁고, 위험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눈부시게 달렸다. 천황제 중심의 국가가 되었고, 교육은 충성을 가르쳤으며, 군대는 국가의 척추가 되었다. 유럽을 좇아 문명을 흡수하던 나라가, 이젠 문명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근대화의 성공은 자신감을 낳았고, 그 자신감은 곧 제국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일본은 승리했다. 동양의 작은 섬나라가 서양 열강을 물리쳤다는 사실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 승리보다 일본을 더 자극한 것은 승리 이후 얻은 ‘위신’이었다.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는 착각, 대륙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다는 확신. 일본은 제국을 꿈꾸기 시작했다. 다이쇼 시대는 짧았다. 쇼와로 넘어가면서 일본은 점점 더 내부를 다잡았다. 언론은 검열되었고, 학교에서는 ‘황국신민’으로서의
5. 전란의 시대 – 전국시대와 삼대 영걸 먼지였다. 짧은 햇살 아래 떠오른 그것은 누군가의 발굽에서 튀어 오른 것이고, 또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산과 들이 전장의 외투를 입었고, 벚꽃보다 빨리 피고 더디게 지는 핏빛 바람이 불었다. 막부의 붕괴는 새로운 혼돈의 문을 열었다. 각 지방의 다이묘들은 스스로를 천하의 주인이라 부르며 검을 뽑았다. 누가 진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깃발 아래에서 싸웠고, 서로의 목을 걸고 전장을 건넜다. 이름 없는 농민들도 이 싸움에 끌려 들어갔다. 그들은 쌀을 얻기 위해, 땅을 지키기 위해, 혹은 이름도 모르는 무사를 따라 목숨을 걸었다. 그 와중에 하나의 이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들었다. 오다 노부나가. 그의 칼은 거칠었고, 그의 불은 모든 관습을 태웠다. 그는 절을 불태우고, 귀족을 무시했으며, 천황마저 자신의 말 위에 세웠다. 전통보다 속도, 의례보다 실리를 앞세운 그는, 마치 시대의 도끼처럼 묵은 질서를 쪼개기 시작했다. 노부나가는 정복자였다. 교토를 손에 넣고, 정적을 제거하며, 전국을 하나로 묶는 사슬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쥐기 전에 배신당했다. 혼노지에서, 가장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