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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한담

요즘 어른들은 너무 바쁘다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모두가 뛰고 있는 것 같다.
걷는 사람조차 마음은 뛰고 있는 듯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어른들,
점심시간에도 일 얘기를 놓지 못하는 직장인들,
퇴근길에 장을 보며 통화를 이어가는 부모들.
눈빛이 늘 어디론가 향해 있다.
그곳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거라 믿으면서.

 

하지만 이상하다.
그 내일이 오면, 사람들은 또 그다음 날을 걱정한다.
마치 끝이 없는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처럼,
잠시 멈춰 서면 넘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쉬는 법을 잊는다.
“요즘은 바쁜 게 당연하지 않나?”
그 말이 습관처럼 입에 붙었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마음이 좀 편해질 줄 알았다.
어른은 어릴 적 나에게 ‘완성된 존재’였다.
그들은 돈도 있고, 자유도 있고, 결정할 권리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그건 착각이었다.
어른은 어릴 적보다 훨씬 더 불안하고, 더 외롭고, 더 조용히 울고 있었다.
자신이 짊어진 책임의 무게만큼, 마음의 여유는 줄어든다.

 

회사에서는 실적이, 가정에서는 역할이, 사회에서는 체면이
끊임없이 어른의 어깨를 두드린다.
“괜찮지?” “버틸 수 있지?”
그 물음은 사실 확인이 아니라 명령에 가깝다.
어른은 괜찮아야 한다.
아파도,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져도, 겉으론 멀쩡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어른들은 더 바빠 보인다.
누군가를 위해 웃고, 버티고, 모른 척하며 하루를 통째로 소비한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일처럼 느껴진다.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는 늘 약속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모두 바쁘기 때문이다.
그 말 속에는 사실 이런 뜻이 숨어 있다.
“나는 지금 네가 그립지만, 나도 나를 챙기기 힘들다.”
어른의 대화는 이렇게 현실적인 피로로 포장되어 있다.
그 피로가 오래되면 마음의 온도는 서서히 식는다.
그때부터 ‘의무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그러다 가끔, 지하철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본다.
아이들이 뛰고, 연인이 웃고, 노인이 벤치에 앉아 햇빛을 받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면, 문득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저 사람들도 잠시 전엔 나처럼 바빴겠지.
그런데 지금은 저렇게 웃고 있네.’
순간의 웃음이 주는 여유, 그게 진짜 부자다.

 

어른이 된다는 건, 시간을 관리하는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마음을 잃지 않는 연습을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바빠도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하루 중 5분이라도 ‘내가 지금 숨 쉬고 있구나’ 느끼는 시간,
그게 어른에게 주어진 작은 사치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산책에서 찾고,
어떤 사람은 커피 향 속에서 찾는다.
누군가는 책 한 장을 넘기며,
또 누군가는 아이의 웃음 속에서 그 시간을 발견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잠시 멈출 수 있는 용기’가 행복의 시작이라는 것.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바쁘다’는 말이 우리 시대의 인사말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안녕하세요?” 대신 “요즘 바쁘시죠?”
그 말은 때로 진심이 아니라 면피다.
내가 상대의 삶에 진짜 관심을 두기엔,
내 삶도 너무 벅차다는 고백일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생은 결국 ‘속도전’이 아니라 ‘방향전’이다.
빨리 가는 게 아니라, 제대로 가는 게 중요하다.
조금 늦어도 좋다.
단지 그 길 위에서 내가 나를 잃지 않는다면.
남보다 앞서기 위해 달리다 보면,
결국 행복은 뒷모습이 된다.

 

요즘 어른들이 바쁜 이유는,
아마도 모두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일 것이다.
가정을 책임지고, 누군가를 지키고,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 마음이 결국 그들을 더 무겁게 만든다.
그러니 가끔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오늘은 조금 쉬어도 괜찮아.”
그 한마디가 무너지기 직전의 하루를 구해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을 안고도 웃을 수 있게 되는 일이다.
요즘 어른들이 너무 바빠 보이는 건,
사실 그만큼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마음이 참 안쓰럽고, 또 아름답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큼은,
그 바쁨 속에서도 자신에게 조금의 자리를 남겨두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셔도 좋고,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것도 좋다.
그 잠깐의 멈춤이 어른에게 허락된 가장 큰 휴식이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겠지만,
그 한가운데서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충분히 어른이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로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