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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NFT의 진짜 경쟁자는 블록체인이 아니라 AI 자체다

NFT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블록체인 생태계 안에서 경쟁 구도를 생각했다. 어떤 체인이 더 빠른가, 수수료는 낮은가, 확장성은 좋은가 같은 문제들이 NFT 시장을 흔들어놓는 핵심 변수처럼 취급되었다. 하지만 지금 디지털 환경의 흐름을 보면 NFT의 실제 경쟁 상대는 블록체인이 아니다. 기술의 저변을 흔드는 더 거대한 흐름, 바로 AI가 NFT의 본질을 위협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의를 강요하고 있다. 이전 기사들이 단순한 ‘시장 침체’나 ‘투기 이후의 허무’ 같은 분석에 머물렀다면, 지금 NFT가 맞닥뜨린 위기는 훨씬 존재론적이다. 디지털 희소성이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하루에도 수천만 개가 새로 태어난다. 음악과 글, 음성, 영상까지 자동 생성되는 시대에 특정 창작물의 원본은 더 이상 예외성을 갖지 못한다. 누구나 원하는 스타일의 그림을 즉석에서 만들고, 몇 분 뒤에는 그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 새로운 변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과거 NFT가 기대했던 희소성은 예술적 유일성에서 출발했는데, 문제는 AI가 ‘유일한 것’이라는 개념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희소성의 기반이 무너질 때, NFT는 더 이상 작품을 기록하는 디지털 서명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보면 NFT의 경쟁 상대는 블록체인이 아니라, 희소성을 무력화하는 AI의 대량 생산 능력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또 다른 흐름이 생긴다. AI가 무한 복제를 가능하게 만든 만큼, 반대로 무엇이 원본인지 확인하는 기술은 더 중요해졌다. 원본과 복제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출처를 증명하는 장치는 필수 인프라가 된다. NFT는 바로 이 틈에서 자신의 역할을 되찾는다. 기존에는 ‘작품의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NFT를 정의했다면, 앞으로는 ‘생성된 콘텐츠의 출처 인증’이라는 구조가 NFT의 새로운 기반이 된다. 예술적 유통이 아니라, 데이터의 출처를 보증하는 역할로 기능이 이동하는 것이다.

 

AI는 창작을 민주화했지만 동시에 희소성의 철학을 붕괴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작가의 손에서 나온 하나의 원본이 그 자체로 가치였다. 지금은 누구나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고, 때로는 AI가 더 빠르고 더 정교하게 창작한다. 창작의 세계가 양적으로 확장될수록, 원작자의 권리와 데이터의 출처는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다. NFT가 되살아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원본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 과정을 증명하는 기능이다. 어떤 이미지를 만들 때 어떤 데이터가 쓰였는지, 어떤 작가의 스타일이 학습에 이용됐는지, 어떤 소스가 기반이 되었는지를 투명하게 기록하는 장치로 역할이 재편되는 과정이다.

 

AI가 스스로 창작물을 양산하는 시대에는 오히려 저작권과 소유권이 더 복잡해진다. 예술적 창작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조합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권리를 돌려줘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때 NFT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각인을 남기는 방식으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한다. 학습 데이터, 생성 방식, 기술적 출처를 투명하게 기록하고 나누는 장치로서 NFT가 필요해진다. 단순히 작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만들어진 맥락을 기록하는 기술적 키로 작동하는 셈이다.

 

NFT가 블록체인 내부 경쟁에서 밀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블록체인 자체는 인프라로 안정화되고 있으며, NFT가 시장에서 조용해진 이유는 AI라는 더 큰 파도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시대의 NFT는 예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창작물이 무한 복제되는 시대에는 진짜보다 진짜 같게 보이는 것이 넘쳐난다. 이때 진짜를 구별해주는 기술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절실해진다. NFT는 바로 그 역할을 맡을 후보 기술이다.

 

결국 NFT의 생존 여부는 투기나 작품 판매가 아니라, AI가 만든 복제의 세계에서 출처와 과정의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달려 있다. NFT의 경쟁자는 블록체인이 아니라 AI다. 그리고 이 경쟁은 파괴가 아니라 재정의의 과정이다. AI가 만든 수많은 복제의 세계에서 NFT는 원본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서명을 남기는 기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NFT는 다시 부상한다.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역할로 조용히 재탄생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