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전략은 경제정책이라기보다 권력의 언어에 가깝다. 그가 다시 꺼내든 ‘관세’는 미국이 잃어버렸다고 믿는 힘을 되찾는 상징이 됐다. 10퍼센트의 일률관세, 그리고 상대국에 대한 상호주의 추가관세. 그 단순한 구조 속에는 복잡한 계산이 숨어 있다.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무역을 손익계산서처럼 대했다. 누가 더 벌고, 누가 더 잃는가. 그의 관점에서 미국은 늘 손해를 봤고, 그 손해를 되돌리는 방법은 세금이 아니라 ‘압박’이었다. 이번 관세 전략은 그 압박의 제도화다. 전 세계의 수입품에 일률적으로 세금을 매기고, 필요하면 추가 관세로 상대를 조인다. 협상의 출발점이자, 언제든 철회할 수 있는 위협이다. 문제는 경제다. 이 전략은 정치적으로는 박수를 받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예측 가능한 결과를 낳는다. 물가 상승, 수입가격 인상, 소비 위축. 미국 내 제조업이 살아날 가능성보다 가계 부담이 늘 확률이 더 높다. 과거 철강과 알루미늄, 대중(對中) 관세 때도 그랬다. 기업들은 비용을 소비자에게 넘겼고, 결국 관세의 무게는 중산층이 짊어졌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물러서지 않는다. 관세는 그에게 정치의 언어이자 무대 장치다. 그는 “미국은 더 이상 호
손흥민의 리더십은 화려한 말이나 포장된 이미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는 경기장 위에서, 그리고 그라운드 밖에서 천천히 신뢰를 쌓아가며 리더라는 자리를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어왔다. 누군가는 그를 ‘조용한 리더’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진짜 팀의 중심’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를 정의하는 가장 정확한 말은 아마도 ‘행동으로 이끄는 사람’일 것이다. 손흥민은 늘 팀을 먼저 생각했다.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거나 자신이 돋보이는 플레이보다, 팀이 더 좋은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선택을 우선했다. 골을 넣는 대신 수비를 돕고, 상대 진영 깊숙이 들어가기보다 동료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움직임을 택했다. 이런 희생적인 플레이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그는 “팀이 이기면 그게 나의 기쁨”이라는 말을 경기마다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토트넘 동료들은 그를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주장’으로 기억한다. 손흥민의 리더십은 말보다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그는 항상 가장 먼저 뛰고, 가장 늦게까지 남는 선수였다. 경기 막판까지 숨을 몰아쉬며 압박을 이어가거나, 실패한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 등을 두드리는 장면은 수없이 목격됐다. 그에게 리더란 높은 곳에서 명령하는 사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하면 된다고 배워왔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사회도 그렇게 말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이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정말 열심히 하는데, 결과는 늘 비슷하고, 삶은 제자리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뭔가 앞서가고, 나만 같은 자리에 멈춰 있는 기분. 그럴 때 사람은 묘하게 자책하게 된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노력이 모자란 걸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열심히 하는 것과 잘 나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라는 단어에 갇혀 산다.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스스로에게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방향이 잘못된 열심은, 오히려 사람을 지치게 만들 뿐이다. 똑같은 길을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면 도착점은 없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잘못된 길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남들처럼’ 열심히 사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제자리인 이유는 단순히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노력을 엉뚱한 곳에 쏟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늘 회사에서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성실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
리더십은 결국 사람의 흐름이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전략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며, 사람의 판단은 그가 가진 기운의 방향에서 비롯된다. 명리학은 그 흐름을 읽는 오래된 도구다.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통해 오행의 균형을 살피고, 그 속에서 어떤 에너지가 강하고 약한지를 본다. 그러나 이것은 운명을 예언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성향의 구조를 분석하는 프레임이다. 현대 심리학이 성격 5요인을 말하듯, 명리학은 오행(木, 火, 土, 金, 水)의 상생상극으로 인간의 리더십 패턴을 설명한다. 리더십의 다섯 기운 목(木)의 리더는 비전형이다. 나무는 자라며 뻗는다. 이들의 리더십은 성장과 확장의 방향으로 향한다. 늘 새로운 길을 찾고, 조직을 위로 끌어올리려 한다. 단점은 조급함이다. 계획보다 실행이 앞서기 쉽다. 목의 리더는 자신의 비전이 다른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경청과 기다림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화(火)의 리더는 열정형이다. 불은 빛과 에너지를 낸다. 이들은 조직의 분위기를 뜨겁게 만드는 카리스마형이다. 다만 지나친 열정은 타인을 태운다. 화의 리더가 조직을 오래 이끌려면, 불의 세기를 조절해야 한다. 자기 확신을 한 걸음 내려놓고, 상대의 불씨를
한때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사회의 기둥이었다. 나이 많은 이가 존중받고, 젊은 세대는 그 권위를 배우며 따랐다. 그러나 지금의 인터넷은 그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나이가 아닌 정보의 속도와 표현의 능력이 힘이 된다. 타이핑이 빠르고, 트렌드를 읽는 감각이 뛰어난 젊은 세대가 온라인의 주도권을 잡는다. 반면 연륜으로 쌓은 경험과 판단은 ‘댓글 몇 줄’에 묻히기 쉽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세상은 나이를 ‘숫자’로만 취급한다. 유튜브나 SNS에서는 열다섯 살이 백만 구독자를 거느릴 수도 있고, 칠십대가 조회수 30을 넘기지 못해 잊혀지기도 한다.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세대 역전이다. ‘연장자’는 오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읽을 수 있었지만, 인터넷은 그 경험의 축적보다 즉각적인 공감과 반응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 결과, 나이가 많을수록 불리한 구조가 되어버렸다. 물론 세대 간 단절을 전적으로 인터넷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 단절을 ‘가속화’시켰다. 과거에는 세대가 다르더라도 같은 마을,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며 살아야 했다. 지금은 세대별로 머무는 공간 자체가 다르다. 20대는 유튜브와 틱톡, 50대는 네이버와 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