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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산업 스파이의 시대, 법과 제도는 따라가고 있는가

최근 대한민국의 첨단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의 기밀 자료를 빼돌리려던 인도네시아 기술자가 적발된 사건, 그리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협력업체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기술 유출은 단순한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경제 경쟁력을 뒤흔드는 심각한 경제 안보 위협이다. 더욱이, 해외 주요국들이 산업 스파이 문제를 ‘간첩죄’ 수준으로 다루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 법 제도는 여전히 허술하고 미비한 수준이다. 대한민국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고, 글로벌 첨단 기술 강국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산업 스파이 대응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산업 스파이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첫째, 핵심 산업 경쟁력의 상실이다.
첨단 기술은 수십 년간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과 인력 투자를 거쳐 축적된 국가의 지적 자산이다. 그러나 산업 스파이에 의해 이 기술이 유출되면, 경쟁국들은 단기간 내에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첨단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정상급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 잡기까지 수십조 원의 R&D 비용과 수십 년간의 노하우가 축적되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고급 기술 인력을 영입하고, 협력업체를 통한 기술 탈취를 시도하면서 단기간에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기술 유출이 지속되면, 대한민국이 선점했던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결국 가격 경쟁에서 밀려나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할 위험이 커진다.

 

둘째, 경제적 피해와 일자리 감소이다.
산업 스파이가 유출하는 기술은 대부분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핵심 산업과 직결되어 있다.
반도체, 방위산업,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등 첨단 기술이 해외로 넘어가면, 국내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기업 수익성이 악화되고, 결국 투자 감소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창출하는 일자리 수는 수십만 개에 이른다. 하지만 반도체 기술이 유출되어 해외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국내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잃고, 이에 따라 일자리 감소와 산업 쇠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실제로, 2018~2020년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SEMES)의 반도체 핵심 기술이 유출되면서, 국내 협력업체들이 수익성 악화를 겪은 사례는 이러한 위험이 현실임을 보여준다.

 

셋째, 국가 안보에 미치는 위협이다.
산업 스파이는 단순히 기업의 기술을 훔치는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KF-21 전투기 기술 유출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KF-21은 대한민국이 자체 개발한 차세대 초음속 전투기로, 국내 방위산업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면, 우리 군의 전략 무기 운용 방식이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며, 국가 안보에도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국가 안보 문제로 인식되면서, 미국·대만·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기술 보호를 위한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방, 인공지능(AI), 첨단 무기 개발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해외 주요국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미국은 1996년 제정된 ‘경제 스파이법(EEA, Economic Espionage Act)’을 통해 산업 기술 유출을 간첩죄 수준으로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2022년,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이 미국 GE(제너럴일렉트릭)의 항공기술을 탈취하려다 적발되었고, 미 연방법원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20년(240개월)형을 선고했다.

 

대만은 TSMC를 비롯한 반도체 산업 보호를 위해 ‘국가핵심기술 보호법’을 강화했다.
특히 반도체 관련 기술 유출을 ‘국가 반역’ 수준으로 규정하고, 최고 종신형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은 2022년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을 개정하여, 기술 유출을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간첩죄에 준하는 형량을 적용하도록 했다.

 

대한민국의 대응, 이대로 괜찮은가?
현재 한국에서는 산업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해도 집행유예 또는 1~2년 수준의 가벼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해외 주요국들의 강력한 처벌과 비교할 때 기술 보호에 대한 법적 대응이 너무 미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국회에는 산업 기술 유출을 ‘간첩죄’ 수준으로 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여러 이유로 계류 상태에 머물고 있다.
산업 스파이 범죄는 점점 더 교묘해지고, 기업 내부 인력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기업 차원의 보안 조치를 넘어, 국가적 차원의 강력한 법과 제도적 대응이 시급하다.

 

산업 스파이는 단순한 경제 범죄가 아니다. 이는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위협하고, 대한민국이 기술 강국으로 성장하는 길을 가로막는 심각한 문제다.

 

반도체, 방위산업, 인공지능, 전기차 배터리 등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기술들이 무방비 상태로 해외로 유출된다면, 결국 한국 경제는 경쟁력을 잃고, 핵심 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도 미국, 대만, 영국처럼 산업 스파이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적 대응을 마련해야 한다.
기술을 지키는 것은 곧 국가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