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바람 앞의 등불
고려의 바람은 거칠었다. 왕위는 높았으나, 왕권은 약했다. 신하들은 서로의 힘을 재며 권력을 나누었고, 나라는 흔들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등불은 흔들렸지만, 그래도 꺼지지는 않았다. 고려의 제17대 왕, 인종. 그는 흔들리는 나라를 붙잡고자 했다.
왕은 어려서 왕좌에 올랐다. 그러나 그 자리엔 온전히 그의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이미 자리 잡힌 듯했고, 그는 그 틀 안에서 살아야 했다. 왕이라 불렸으나, 왕이라기보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같았다.
이자겸의 난, 권력의 그림자
왕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왕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왕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고려의 실권은 오랫동안 문벌 귀족들에게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는 이자겸이었다. 왕의 외할아버지이자 최고의 권력자.
이자겸은 왕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왕을 이용하려 했다. 그는 자신의 딸들을 왕비로 들였고,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고려의 왕좌조차 그에게는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과 같았다.
그러나 인종은 조용히 지켜보지 않았다. 그는 왕권을 되찾고자 했다. 1126년, 그는 이자겸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나 계획은 새어나갔고, 이자겸은 선수를 쳤다. 왕의 측근들은 죽거나 유배되었고, 왕은 궁궐에 갇혔다. 왕이었으나, 그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바람이 언제까지나 한 방향으로만 불지는 않았다. 이자겸의 권력은 스스로 무너졌다. 그의 오만함은 신하들의 반감을 샀고, 그의 편에 서 있던 자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자겸은 쫓겨났다.
왕은 되찾았다. 그러나 왕좌를 온전히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고려의 정치 구조는 이미 그 자체로 거대한 산이었다. 인종은 그 산을 넘으려 했으나,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다.
묘청의 난, 개혁과 반동
왕이 신하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신하들 중에서도 어떤 이는 왕을 위하는 듯했고, 어떤 이는 왕을 흔들었다. 왕은 그들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신하들끼리 싸웠다.
묘청, 그는 새 시대를 원했다. 고려가 나아가야 할 길은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수도를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기고, 스스로 강한 나라를 만들자고 했다. 중국 송나라에 의존하지 말고, 오히려 스스로 황제가 되어 독립적인 고려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파가 있었다. 김부식과 유교적 문벌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고려가 기존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송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유교적인 정치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은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개경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것이 더 안정적인 길이었다. 묘청의 개혁은 너무 빠르고, 너무 급했다. 결국 묘청은 반란을 일으켰다. 1135년, 서경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이 반란을 진압했다. 묘청은 죽었고, 그의 꿈도 사라졌다. 그러나 그 꿈은 고려의 미래를 바꾸는 불씨가 되었다.
왕은 그 전쟁을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혼란 속에서 질서를 원했으나, 질서를 잡으려 할수록 혼란은 커졌다.
문화와 불교, 고려의 빛을 밝히다
그러나 인종은 단순히 정치적 혼란 속에서만 살아간 왕은 아니었다. 그는 문화를 사랑했고, 불교를 존중했다. 혼란 속에서도 고려를 더욱 빛나게 만들고자 했다.
그가 남긴 것 중 하나는 대장경(大藏經) 간행이었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다. 그러나 전란과 혼란 속에서 불경이 훼손되고 사라졌다. 왕은 불교를 보호하고자 했다. 새로운 대장경을 만들도록 했다. 그것은 고려 불교의 상징이 되었고, 이후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다시 간행되었다.
그는 또한 학문을 장려했다. 그는 도서관을 세우고, 학자들을 지원했다. 그의 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김부식이 쓴 역사서로, 고려가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왕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빛을 남기려 했다. 그것이 정치에서든, 문화에서든, 그는 고려를 지켜내려 했다.
인종이 남긴 것들
그는 강한 왕은 아니었다. 그러나 약한 왕도 아니었다. 그는 고려의 바람 속에서 흔들렸지만, 끝까지 버텼다. 그는 권력을 잃을 뻔했으나 되찾았고, 개혁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나 그 의미를 깨달았다.
그가 남긴 것은 정치의 교훈이었다.
그가 남긴 것은 고려의 문화였다.
그가 남긴 것은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고려는 더욱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문화와 학문은 고려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인종. 그는 결코 강력한 군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고려를 위해 고민했고, 고려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고려는 여전히 그 바람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