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신돈, 개혁의 길을 걷다
고려의 거리는 술렁였다. 왕이 있지만, 그 왕의 힘은 온전하지 않았다. 원나라의 그늘은 아직 짙었고, 귀족들은 여전히 권력을 움켜쥐고 있었다. 백성들은 변화를 바랐으나,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때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벼슬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었다. 붓을 잡고 문서를 쓰던 문신도, 칼을 들고 전장을 누비던 장군도 아니었다. 검은 승복을 걸친 승려였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그의 이름은 신돈(辛旽).
그는 왕이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았다. 왕의 뜻을 이루려 했고,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려 했다. 그러나 개혁이란 것은 언제나 많은 적을 만드는 법이었다.
승려에서 권력자로
신돈은 원래 승려였다.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처음부터 권력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머리가 좋았고, 현실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공민왕은 혼자 힘으로 고려를 바꿀 수 없었다. 원나라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했고, 귀족들은 왕을 견제하고 있었다. 왕권을 되찾으려면, 왕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공민왕은 신돈을 선택했다.
신돈은 승려였기에 정치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시선을 가졌고, 기존의 질서를 깨부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공민왕은 그를 믿고, 조정의 중심에 앉혔다.
귀족들은 분노했다. 한낱 승려가 나라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신돈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공민왕의 개혁을 도왔고, 스스로 개혁의 선봉에 섰다.
전민변정도감, 백성을 위한 개혁
고려의 땅은 귀족들의 것이었다. 왕조차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거대한 힘이 귀족들의 손에 있었다.
그러나 신돈은 그것을 바꾸려 했다.
그가 내세운 것은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행정 기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려의 부패한 귀족 사회를 무너뜨리려는 도구였다.
전민변정도감의 역할은 명확했다.
귀족들이 빼앗은 토지를 되찾아 백성들에게 돌려준다.
불법으로 노비가 된 자들을 해방시킨다.
귀족들의 권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한다.
귀족들은 신돈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고려의 부를 독점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신돈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조사를 명령했고, 많은 귀족들이 땅을 빼앗겼다. 백성들은 환호했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개혁이 쉽지는 않았다.
귀족들은 반발했다. 그들은 신돈이 왕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돈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외쳤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신하들이 왕에게 신돈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왕의 신뢰와, 그 끝
공민왕은 신돈을 믿었다. 그는 신돈이 고려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돈은 점점 더 많은 적을 만들고 있었다. 귀족들뿐만 아니라, 왕을 둘러싼 신하들조차도 신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소문이 돌았다. 신돈이 왕을 배신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신돈이 지나치게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말이 퍼졌다.
공민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돈을 보호했지만, 점차 신하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돈은 궁궐에서 쫓겨났다.
1365년, 신돈은 처형되었다.
그의 개혁은 끝났다. 전민변정도감도 점차 힘을 잃었다. 귀족들은 다시 권력을 되찾았고, 신돈이 이루려 했던 개혁은 흔적만 남게 되었다.
신돈이 남긴 것들
그는 승려였다. 그러나 단순한 승려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고려를 바꾸려 했고, 고려의 새로운 길을 만들려 했다.
그가 남긴 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전민변정도감 설치: 귀족들의 부당한 토지 소유를 개혁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남.
왕권 강화: 공민왕을 도와 귀족들의 권력을 견제했으나, 결국 반발을 불러옴.
신진 사대부 등장: 그의 개혁은 후일 신진 사대부 세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음.
그는 고려를 바꾸려 했으나, 고려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우리는 신돈을 단순한 승려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는 고려의 개혁가였다. 그러나 고려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왕의 신뢰를 받았으나, 결국 왕도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려는 다시, 예전의 고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