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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방원, 피로 쓴 조선의 역사

 


그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편에서는 충신이라 불렸고, 다른 한편에서는 냉혹한 권력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는 조선을 만든 이였다. 조선을 세운 것은 그의 아버지 이성계였으나, 조선을 지킨 것은 그였다. 칼을 들었고, 형제를 베었으며, 끝내 왕이 되었다. 그가 걷던 길은 늘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방원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집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었다.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그의 형제들은 권력을 나누어 가졌고, 그는 그들 사이에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는 단순한 무장이 아니었다. 학문을 익혔고, 시를 읊었으며,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권력을 쥐고 싶었다. 조선을 다스리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왕자의 난, 형제를 베다
조선이 막 세워졌을 때, 왕이 된 이는 그의 아버지 이성계였다. 그러나 왕이 된다는 것이 모든 것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고려의 기틀을 부수고 새 왕조를 세웠지만, 조선은 아직 불안정한 나라였다. 대신들은 권력을 나누어 가지려 했고, 왕의 아들들 역시 저마다 왕좌를 노리고 있었다.
이방원은 누구보다 조선의 중심을 꿰뚫어보았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위협한 것은 형제들이 아니라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신흥 사대부의 중심 인물이었고, 조선을 설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왕권이 아니라 신권이었다.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상징적 존재일 뿐, 실제 정치는 대신들이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방원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조선을 만든 것은 그의 아버지였고, 그의 집안이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왕의 힘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만들려 했다. 이방원에게 그것은 반역과 다를 바 없었다.
1398년, 그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군사를 모았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칼이 빛났다. 문이 부서졌다. 그리고 피가 흘렀다. 형인 방우, 방과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정도전 역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조선의 권력 구조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제1차 왕자의 난이었다.
이 난을 통해 그는 조선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왕이 되지는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두려워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조선을 위해서도 위험한 일이었다. 이방원은 잠시 물러났다. 그러나 물러선다는 것이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기다렸다.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 믿었다.

 

다시 한 번 피를 흘리고, 왕이 되다
1400년, 그는 다시 한 번 칼을 들었다. 그의 형제들 중 남은 이는 이제 방간과 방석뿐이었다. 그러나 이방원은 이제 형제가 아니라 조선을 위해 싸운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방간과 맞섰고, 그를 제거했다. 방석 역시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그의 앞길을 막는 자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왕좌뿐이었다.
그러나 왕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를 경계했다. 결국, 태종이 되기까지 그는 여러 번 굽혔다. 그러나 그 굽힘은 굴복이 아니었다. 더 큰 힘을 얻기 위한 기다림이었다.
1400년, 그는 마침내 왕이 되었다. 태종이라는 이름으로.

 

왕권을 다지고, 조선을 세우다
왕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칼을 들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조선을 더 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왕권을 강화했다.
사병 혁파: 권신들이 사적으로 거느리던 군대를 해체했다. 왕이 직접 군권을 장악했다.
6조 직계제: 모든 정무를 신하들의 합의가 아니라, 왕이 직접 보고받고 처리하도록 했다.
신문고 설치: 억울한 백성들이 직접 왕에게 하소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방원은 조선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강압적이었다. 반대하는 자는 제거되었다. 신하는 왕에게 복종해야 했다. 그것이 태종의 조선이었다.

 

그가 남긴 것들
그의 통치는 강력했고, 조선의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무인이 아니었다. 그는 학문을 사랑했고, 문화의 발전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가 남긴 유물은 많다.
태종 어보: 그가 사용했던 왕의 인장.
태종실록: 그의 통치를 기록한 역사서.
용비어천가: 그의 아들 세종이 지었지만,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조선을 만든 자였다. 그러나 그는 조선을 떠나야 했다.

1422년, 그는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었다. 그는 강한 왕이었지만, 더 이상 자신의 방식이 조선을 이끌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세종은 그의 아들이었고,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선을 다스릴 사람이었다.
그는 왕위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만든 조선은 계속 남아 있었다.

 

역사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그는 피로 길을 닦았고, 칼로 조선을 세웠다. 형제를 죽였고, 권력을 쥐었다. 그러나 그가 없었다면 조선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를 폭군이라 부르는 자도 있고, 명군이라 부르는 자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는 조선을 만든 왕이었다.
그의 조선은 세종에게로 이어졌고, 이후 500년을 지속했다.
그리고 역사는 그를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조선의 첫 번째 실질적 왕으로 남아 있다.
그가 선택한 길은 피로 얼룩졌으나, 그것이 조선을 남겼다. 그것이 그가 걸었던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