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고려의 마지막 충신 고려의 하늘은 무거웠다. 왕은 있었으나, 왕의 말은 힘을 잃고 있었다. 신하들은 갈라졌고, 나라의 운명은 위태로웠다. 고려는 더 이상 고려답지 않았고,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가 있었다. 그는 고려를 떠나지 않았다. 고려가 무너져도, 그는 고려의 신하로 남고자 했다. 그의 이름은 정몽주. 그는 학자였고, 정치가였으며,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려 했던 충신이었다. 학문을 통해 나라를 꿈꾸다 정몽주는 학문을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우려 했다. 그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었다. 그는 고려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붙잡으려 했다. 그는 성리학을 연구했다. 그것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였고,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였다. 그는 그것을 신념으로 삼았다. 그는 학문으로 고려를 새롭게 만들고자 했다. 왕이 흔들려도, 나라의 근본이 바로 서 있다면 고려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는 고려의 유학을 발전시켰고,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학문만으로 나라를 지킬 수는 없었다. 그는 현실 속으로 들어갔다. 고려를 지키려 했던 정치가 정몽주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그
이성계, 고려를 넘어 조선을 열다 고려의 끝자락, 전쟁은 멈출 줄 몰랐다. 북쪽에서는 여진족이 기회를 노렸고, 남쪽에서는 왜구가 해안을 침탈했다. 원나라가 사라지자, 이제 명나라가 고려를 압박했다. 왕실은 흔들렸고, 신하들은 갈라졌다. 고려는 여전히 고려였으나, 그 고려를 유지할 힘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혼란 속에서 한 장군이 있었다. 그는 한 번도 고려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고려를 떠나게 되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고려를 지키는 길이 아니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길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성계(李成桂). 고려의 장군, 전쟁터에서 이름을 떨치다 이성계는 무장이었다. 말 위에서 싸웠고, 칼을 들고 고려를 지켰다. 고려가 흔들릴 때, 그가 있었고, 고려가 승리를 거둘 때, 그 또한 있었다. 그가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여진족과의 전투에서였다. 여진족은 북쪽에서 고려의 국경을 위협했다. 고려는 국경을 지켜야 했고, 그 싸움에 이성계가 있었다. 그는 빠르게 움직였고, 적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고려의 군대는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그는 승리를 가져왔다. 그러나 고려의 진짜 적은 바다 건너에서 왔다. 왜구가 고려의 해안을 쓸고 다녔다. 그
고려 신돈, 개혁의 길을 걷다 고려의 거리는 술렁였다. 왕이 있지만, 그 왕의 힘은 온전하지 않았다. 원나라의 그늘은 아직 짙었고, 귀족들은 여전히 권력을 움켜쥐고 있었다. 백성들은 변화를 바랐으나,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때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벼슬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었다. 붓을 잡고 문서를 쓰던 문신도, 칼을 들고 전장을 누비던 장군도 아니었다. 검은 승복을 걸친 승려였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그의 이름은 신돈(辛旽). 그는 왕이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았다. 왕의 뜻을 이루려 했고,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려 했다. 그러나 개혁이란 것은 언제나 많은 적을 만드는 법이었다. 승려에서 권력자로 신돈은 원래 승려였다.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처음부터 권력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머리가 좋았고, 현실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공민왕은 혼자 힘으로 고려를 바꿀 수 없었다. 원나라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했고, 귀족들은 왕을 견제하고 있었다. 왕권을 되찾으려면, 왕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공민왕은 신돈을 선택했다. 신돈은 승려였기에 정치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시선을 가졌
공민왕, 고려를 되찾다 고려의 하늘은 흐려 있었다. 왕은 있었으나, 왕이 아니었다. 원나라의 힘이 강했고, 고려의 왕조는 그들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원나라에서 왕을 세우고, 원나라에서 왕을 폐위했다. 고려는 고려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거부한 왕이 있었다. 그는 왕이었으나, 원나라의 신하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고려를 고려답게 만들고 싶었다. 그의 이름은 공민왕. 그는 고려를 되찾으려 했다. 고려를 원나라의 손에서 빼앗아, 다시 고려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반원 개혁, 원나라의 그늘에서 벗어나다 공민왕이 즉위한 것은 1351년이었다. 고려는 이미 원나라의 지배를 받은 지 오래였다. 왕조차도 원나라에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왕의 뒤에는 원나라의 관리가 있었고, 고려의 귀족들은 원나라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공민왕은 그 질서를 깨뜨렸다. 그는 원나라의 옷을 벗어던졌다. 고려의 왕이 원나라의 옷을 입고, 원나라의 말을 쓰는 것을 그는 거부했다. 그는 원나라에서 파견된 정동행성을 폐지했다. 그것은 고려를 직접 통치하는 원나라의 기관이었다. 그것이 사라진 것은 고려가 다시 독립적인 나라가 된다는 뜻이었
충숙왕, 두 나라 사이에 선 왕 고려의 왕은 하나였다. 그러나 그 왕이 바라보는 곳은 두 곳이었다. 하나는 고려였고, 하나는 원나라였다. 왕이지만, 온전히 고려의 왕일 수 없었다. 원나라의 허락 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었고, 고려의 백성들은 왕을 올려다보면서도 그 위에 있는 또 다른 힘을 알고 있었다. 그 혼란의 시대 속에서 한 왕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충숙왕(忠肅王). 그는 원나라에서 자랐고, 고려에서 통치했다. 그러나 왕의 자리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고려를 지키려 했으나, 고려는 이미 원나라의 그늘 아래 있었다. 그는 무너지는 왕권을 지켜야 했고, 흔들리는 고려를 붙잡아야 했다. 그러나 고려는 그에게 쉽지 않은 왕국이었다. 고려의 왕, 원나라의 신하 충숙왕은 원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고려의 왕자였으나, 고려에서 자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충선왕 역시 원나라와 고려 사이에서 흔들리며 다스렸다. 그리고 충선왕이 물러난 후, 충숙왕이 고려의 왕이 되었다. 1321년, 그는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자유를 주지는 않았다. 그는 원나라의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고, 고려의 왕이었지만 원나라의 신하였다. 그의
충선왕, 고려의 두 얼굴 고려의 왕은 하나였으나, 충선왕에게는 두 개의 얼굴이 있었다. 고려의 왕이면서도, 원나라의 신하였다. 그는 두 나라 사이에서 흔들렸다. 고려의 왕좌에 앉았으나, 그 자리조차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몽골에서 태어났고, 몽골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뿌리는 고려에 있었다. 그는 원나라의 질서 속에서 고려를 지켜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고려를 바꾸려 했다. 그러나 고려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개혁을 꿈꾸다 충선왕은 단순한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학문을 좋아했고,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고려가 그대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고려는 원나라의 그늘 아래에 있었고, 왕권은 약했다. 그는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문벌귀족들은 고려의 정치를 장악하고 있었고, 왕조차도 그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충선왕은 그 벽을 깨려 했다. 그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정방을 폐지했다. 정방은 고려의 인사권을 장악한 기관이었다. 문벌귀족들은 정방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충선왕은 그것을 없애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귀족들은 반발했다. 왕이 모든 것을
충렬왕, 고려의 굴복과 변화 고려의 하늘이 흐려졌다. 몽골의 군대가 국경을 넘었고, 전쟁은 끝날 줄 몰랐다. 왕은 수도를 버리고 강화도로 피신했다. 고려의 땅은 몽골의 발길에 짓밟혔고, 백성들은 전쟁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이제 고려는 선택해야 했다. 끝까지 싸울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을 것인가. 고려의 왕실은 굴복을 선택했다. 몽골의 힘을 인정하고, 그들의 질서 속에서 고려를 지켜나가기로 했다. 그 선택의 중심에 한 왕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충렬왕(忠烈王). 그는 왕이었지만, 고려의 왕이면서도 몽골의 신하였다. 그는 고려를 지키려 했으나, 고려를 온전히 지킬 수는 없었다. 개경으로 돌아오다 충렬왕이 왕이 된 것은 1274년이었다. 그는 고려의 첫 번째 충(忠) 자 왕이었다. 이전의 왕들은 몽골에 끝까지 저항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싸울 수 없었다. 몽골은 고려를 완전히 장악했고, 고려는 결국 항복했다. 충렬왕은 몽골의 황제 쿠빌라이 칸의 사위가 되었다. 그는 원나라의 황실과 혼인 관계를 맺고, 고려 왕위를 인정받았다. 고려는 더 이상 독립적인 왕국이 아니었다. 고려의 왕은 원나라의 신하가 되었고, 모든 중요한 결정은 원나라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고려 이자겸, 권력을 탐한 사내 고려의 궁궐은 조용하지 않았다. 왕이 앉아 있는 왕좌 뒤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권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왕이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그 명령이 곧바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왕은 강해야 했다. 그러나 왕보다 더 강한 자가 있었다. 그 자는 왕족이었으나, 왕이 아니었다. 신하였으나, 왕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고려의 정치 한가운데에서 모든 권력을 움켜쥐고 흔든 자, 그의 이름은 이자겸(李資謙). 그는 왕을 조종하려 했고, 결국 왕이 되려 했다. 그러나 권력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왕실과 하나가 된 사내 이자겸은 고려의 유력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귀족이 아니었다. 그의 집안은 고려 왕실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는 그 인연을 이용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단순했다. 왕과 가까워지는 것. 그러나 그는 단순히 왕의 신하로 남고 싶지 않았다. 그는 왕이 가진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 방법은 혼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딸들을 왕비로 만들었다. 한 명도 아니었다. 네 명의 딸을 고려 인종의 왕비로 들였다. 왕의 장인은 곧 왕의 후견인이었다. 왕실은 이제 그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왕은 그의 사위였
강감찬, 하늘이 내린 장군 고려의 하늘은 불안했다. 북쪽에서 몰려오는 거란의 바람은 매서웠고, 나라를 위협하는 적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려는 싸워야 했고, 이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신하였으나, 칼을 들 줄 알았고, 장군이었으나, 책을 놓지 않았다. 고려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이름은 강감찬(姜邯贊). 그는 단순한 장수가 아니었다. 그는 고려를 지킨 영웅이었다. 귀주 대첩, 거란을 무너뜨리다 1010년, 고려는 위기에 처했다. 거란의 2차 침입이었다. 왕은 피난을 떠나야 했고, 수도 개경은 불타올랐다. 고려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1018년, 거란은 다시 침략해 왔다. 이번에는 더 강한 군대를 이끌고 왔다. 고려를 완전히 무너뜨리려 했다. 강감찬은 조정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왕은 그에게 고려의 운명을 맡겼다. 강감찬은 병사들을 모았다. 그리고 거란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는 단순히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적을 유인했다. 거란군을 고려 깊숙이 끌어들였다. 그들이 방심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귀
고려 최우, 권력을 다스린 자 고려의 권력은 칼 위에 있었다. 왕이 명령을 내리지만, 그 명령을 따르는 자는 없었다. 왕은 있었으나, 왕국은 무신들의 것이었다. 그 혼란의 중심에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려를 다스리는 자였으나 왕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고려를 움직였으나, 왕좌에 앉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최우(崔瑀). 아버지 최충헌이 무신정권을 세웠고, 그는 그 정권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단순히 이어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무신정권을 완성시킨 사람이었다. 교정도감을 손에 넣다 최우는 조용히 권력을 잡았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버지 최충헌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그 뒤를 이었다. 무신정권을 이어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길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무신들 사이에서도 힘의 균형이 필요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했고, 조금만 방심하면 권력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그는 먼저 교정도감(敎定都監)을 장악했다. 교정도감은 고려의 실질적인 정치를 운영하는 기관이었다. 왕의 명령보다, 이곳에서 내려지는 결정이 더 중요했다. 최우는 그곳을 철저하게 장악했고, 모든 권력은 그의 손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군사적인 힘만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