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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행은 왜 금리만 오르면 웃는가: 4% 시대의 돈의 흐름

은행 창구에 앉아 있으면, 세상은 마치 숫자들로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는 순간, 그 숫자 속에서는 아주 인간적인 감정이 흐른다. 누군가는 한숨을 쉬고, 누군가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은행들은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금리가 오른다는 건, 겉으로는 경제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돈이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사건이다.

 

 

은행이 금리가 오를 때 웃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구조적이다.
은행은 돈을 파는 가게다.
사람들로부터 예금을 ‘사서’, 그 돈을 대출로 ‘판다’.
예금 금리는 싸게 사고, 대출 금리는 비싸게 파는 것이다. 이 차이를 이자마진이라고 한다.

 

평상시에는 이 마진이 크지 않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올라가는 순간 상황이 달라진다.
은행은 예금금리를 조금만 올려도 되고, 대출금리는 더 크게 올릴 수 있다.
그 사이에 생기는 차이, 즉 마진이 훨씬 넓어진다.
고객의 돈은 그대로지만, 은행이 벌어들이는 이자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흐름은 마치 이런 장면과 닮아 있다.
얕은 개울에서는 물이 흐르는 속도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큰 비가 한 번 쏟아지면, 낮은 골짜기에 물이 한꺼번에 몰리듯 은행에는 자금이 빠르게 흘러들어온다.
사람들은 금리가 오르면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돈을 안전한 곳에 두려 하기 때문이다.
그 ‘안전한 곳’이 바로 은행이다.
그래서 금리 상승기에는 은행의 예금이 늘어나고, 이 돈은 다시 더 높은 이자로 대출되며, 은행의 수익 구조가 강해진다.

 

더 중요한 장면은 바로 대출자들의 상황이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월 상환액이 늘어나 숨이 차기 시작한다.
집을 산 사람도, 사업을 하는 사람도, 카드론을 이용한 사람도 모두 같은 압력을 느낀다.
하지만 은행은 그 압력에서 벗어나 있다.
은행은 돈을 빌려준 순간부터 ‘이자’라는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한다.
금리가 오르면 그 이자는 더 커진다.
즉, 경제가 흔들리고 사람들이 불안을 느낄수록 은행의 수익은 단단해지는 구조다.

 

물론 은행도 금리가 높아지면 대출 부실이라는 위험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은행 시스템은 이 위험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자본 규제가 강화되어 있다.
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 겹의 안전장치가 작동한다.
그리고 대출이 줄어드는 시기에도 은행은 예대마진뿐 아니라 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한다.
주식 계좌, 외환 거래, 카드, 펀드…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이 자산 관리를 위해 은행을 찾는 빈도는 오히려 늘어난다.

 

4% 시대의 금리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돈의 흐름이 재배치되는 신호다.
부동산 시장은 움츠러들고, 기업은 투자보다 현금을 쌓기 시작한다.
가계는 안전을 위해 움직이고, 소비는 줄어들며, 사람들은 ‘나중’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흐름 속에서도 은행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린다.
세상이 팔랑거리듯 흔들릴 때, 은행은 오히려 더 굳건해진다.

 

그래서 금리가 오르면 은행은 웃는다.
돈이 위험을 피해 몰려오고, 예대마진은 넓어지고, 경제가 위축될수록 은행이라는 성은 더 견고해진다.
이 아이러니는 현대 자본주의의 깊은 구조를 드러낸다.
누구는 버티기 힘들어지고, 누구는 수익을 쌓아간다.

 

우리가 금리 뉴스를 볼 때마다 느끼는 그 가벼운 불안은 사실 아주 정직한 감각이다.
금리가 오르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씩 숨이 가빠진다.
하지만 은행들은 그 순간, 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다음 사이클을 준비한다.

 

4% 시대는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돈은 지금 어디에 있고, 누구를 위해 흐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