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헌, 고려 무신의 시대를 열다 고려의 왕은 왕이 아니었다. 왕좌에 앉아 있었지만, 권력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신하들이 왕을 움직였고, 때로는 왕을 내쫓기도 했다. 왕은 명령을 내릴 수 있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 나라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귀족들은 권력을 나누었고, 문신들은 학문을 이야기하며 정치를 논했다. 그러나 그 틈에서 점점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억눌린 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마침내, 무신들이 칼을 들었다. 고려의 역사는 그날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무신정변, 칼이 권력을 잡다 1170년. 문신들의 시대는 끝났다. 무신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들은 왕을 폐위하고, 스스로 권력을 쥐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 싸웠다. 무신들이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했지만, 누구도 완벽한 힘을 가지지 못했다. 왕은 허수아비가 되었고, 나라에는 혼란만 남았다. 그 혼란 속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1196년, 그는 칼을 들었다. 그의 이름은 최충헌(崔忠獻). 그는 기존의 무신들과 달랐다. 그는 단순히 칼을 휘두르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권력을
윤관, 북방을 개척하다 고려의 북쪽은 늘 불안했다. 국경 너머에는 여진족이 있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빠르게 움직였고, 때때로 고려의 땅을 침범했다. 고려의 백성들은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다. 윤관은 그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고려의 장군이었다. 단순히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그는 결심했다. 고려는 더 이상 방어만 해서는 안 된다고. 적을 밀어내고, 새로운 땅을 개척해야 한다고. 별무반,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다 고려의 기존 군대는 강했지만, 여진족을 상대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고려의 보병들은 강했지만, 여진족의 기동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기마 전술에 능했고, 빠르게 움직이며 고려군을 괴롭혔다. 윤관은 새로운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보병 중심의 전력이 아니라, 기병을 활용한 전략적 부대가 필요했다. 그는 고려 역사상 최초로 기병 중심의 군대인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했다. 별무반은 크게 세 부대로 나뉘었다. 신기군(神騎軍) – 고려의 정예 기병부대. 여진족의 기마 전술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신보군(神步軍) – 강력한 보병부대. 기병을 보조하며 전투의 중심을
김부식, 고려의 역사를 기록하다 고려의 땅은 넓었고, 바람은 거칠었다. 왕이 앉아 있는 개경에서는 조용한 듯했지만, 나라 곳곳에서는 새로운 변화의 기운이 일고 있었다. 누군가는 고려를 더 강하게 만들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고려의 뿌리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김부식은 후자였다. 그는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고려는 이미 오래된 나라였고, 그 안에서 질서가 필요했다. 그는 변화를 멀리하고, 안정 속에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항상 바람처럼 불었다. 그는 그 바람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유교적 통치를 지키다 김부식은 고려의 문신이었다. 그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었다. 그는 고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고, 그것을 지키려 했다. 고려는 본래 불교의 나라였다. 그러나 김부식은 유교를 기반으로 한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교의 가르침이 곧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 믿었다. 군주는 백성을 다스리고, 신하는 군주를 보좌해야 한다. 그러려면 문벌귀족이 중심이 되어야 했다. 그들이 왕과 함께 고려를 이끌어야 나라가 안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변화는 항상 불쑥 찾아왔고, 새
묘청, 새로운 하늘을 꿈꾸다 고려의 하늘은 흐려 있었다.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왕은 있지만 힘이 없었다. 신하들은 서로 다른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는 옛것을 지켜야 한다 했고, 누구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묘청이 서 있었다. 묘청은 새로운 하늘을 꿈꾸었다. 그는 단순한 승려가 아니었다. 그는 고려를 바꾸려 했다. 고려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너무 거대했고, 세상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서경 천도, 새로운 시대를 향한 외침 묘청은 고려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가 본 고려는 낡아 있었다. 개경은 이미 오래된 도시였다. 그곳에는 문벌귀족들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묘청은 말했다. 고려는 개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대를 열려면, 새로운 수도가 필요하다. 그는 서경(西京)을 바라보았다. 서경은 넓고, 북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땅이었다. 그는 왕에게 말했다. "서경으로 가야 합니다. 거기서 새로운 고려를 만들어야 합니다." 왕은 흔들렸다. 인종은 약한 왕이었고, 귀족들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묘청의 말은 매력
의천, 고려의 불빛을 밝히다 고려의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었다. 하나는 왕이었고, 또 하나는 불교였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불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렸다. 불교는 오랜 세월 고려의 중심이었고, 때로는 왕보다 더 강한 힘을 가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불교도 흐트러졌다. 선종과 교종이 서로 갈라져 다투었고, 승려들은 제각기 자기 길을 갔다. 부처의 가르침은 하나였으나, 신도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그때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왕의 아들이었으나, 왕좌를 바라지 않았다. 그는 부처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의 이름은 의천.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이었다. 왕의 아들이 되지 않고, 부처의 제자가 되다 왕자로 태어나면, 누구나 왕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의천은 달랐다. 그는 왕좌보다 경전을 원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책을 읽었고, 불경을 외웠다. 신하들은 그를 신기하게 여겼다. 왕의 자식이 칼을 들지 않고, 불경을 펼치고 있었으니. 그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승려가 되었다.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부처의 길을 따랐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수도자의 길은 아니었다. 그는 불교를 바꾸고자 했다. 그는 고려의 신앙을 더 깊이 있게 만들고자 했다. 그는
인종, 바람 앞의 등불 고려의 바람은 거칠었다. 왕위는 높았으나, 왕권은 약했다. 신하들은 서로의 힘을 재며 권력을 나누었고, 나라는 흔들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등불은 흔들렸지만, 그래도 꺼지지는 않았다. 고려의 제17대 왕, 인종. 그는 흔들리는 나라를 붙잡고자 했다. 왕은 어려서 왕좌에 올랐다. 그러나 그 자리엔 온전히 그의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이미 자리 잡힌 듯했고, 그는 그 틀 안에서 살아야 했다. 왕이라 불렸으나, 왕이라기보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같았다. 이자겸의 난, 권력의 그림자 왕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왕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왕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고려의 실권은 오랫동안 문벌 귀족들에게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는 이자겸이었다. 왕의 외할아버지이자 최고의 권력자. 이자겸은 왕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왕을 이용하려 했다. 그는 자신의 딸들을 왕비로 들였고,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고려의 왕좌조차 그에게는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과 같았다. 그러나 인종은 조용히 지켜보지 않았다. 그는 왕권을 되찾고자 했다. 1126년, 그는 이자겸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나 계획은 새어나갔고, 이자겸은 선수를 쳤다.
고려 예종, 배움과 강함으로 나라를 다스리다 고려는 변하고 있었다. 왕이 바뀌었고, 시대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안정되려면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배움이 있어야 했다. 지식이 있어야 나라가 오래갔다. 예종은 그것을 알았다. 그는 고려의 16대 왕이었다. 그의 아버지 숙종은 화폐를 만들었고, 군대를 정비했다. 이제 예종이 고려를 다듬을 차례였다. 그는 단순한 왕이 아니었다. 그는 배우는 왕이었다. 그는 강한 나라를 원했다. 그러나 그 강함은 무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고려를 바꾸려 했다. 그리고 그는 해냈다. 국자감 정비, 배움을 나라의 힘으로 삼다 예종은 배움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고려는 오랫동안 불교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나라를 운영하려면 유학이 필요했다. 신하들이 학문을 배우고, 백성들이 지식을 쌓아야 했다. 그래야 고려가 발전할 수 있었다. 그는 국자감(國子監)을 강화했다. 국자감은 고려의 최고 교육 기관이었다. 그러나 예종은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문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7재(七齋)라는 전문 교육 과정을 만들었다. 7재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숙종, 고려를 다시 일으킨 왕 고려는 흔들리고 있었다. 왕권이 약해졌고, 나라의 질서는 흐트러지고 있었다. 문종의 시대는 평화로웠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문종이 떠난 뒤, 고려는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혼란 속에서 한 사내가 왕이 되었다. 그는 고려의 15대 왕, 숙종이었다. 그는 강한 왕이 되고자 했다. 고려가 다시 강한 나라가 되길 바랐다.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행동하는 왕이었다. 화폐를 만들다, 새로운 경제를 열다 숙종은 경제를 바꾸려 했다. 고려에는 돈이 없었다. 아니, 돈은 있었지만,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물건을 물건으로 바꾸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경제가 움직여야 했다. 그는 고려에 화폐를 만들기로 했다. 해동통보(海東通寶). 고려 최초의 주조 화폐였다. 그는 직접 명령을 내리고, 돈을 만들어 유통하게 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낯설어했다. 그러나 왕이 나서서 밀어붙였다. 화폐는 곧 고려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었다. 화폐를 만든다는 것은 고려가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의미였다. 이제 고려는 교역이 활발해질 것이었고, 사람들은 돈을 쓰는 법을 익혀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고려 문종, 고려의 황금시대를 열다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라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왕들은 다투지 않았고, 호족들의 힘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혼란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었다. 고려는 이제 무엇이 되어야 할까? 문종은 그 질문에 답하려 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아는 왕이었다.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글을 읽고, 사람을 살폈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혼란보다는 안정을 원했다. 그는 고려를 강한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강함이란 단순한 군사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강한 법, 강한 문화, 강한 제도가 필요했다. 그는 그것을 만들었다. 경정전시과, 나라의 틀을 다듬다 나라를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고려는 전쟁을 피하고 있었지만, 전쟁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신하들에게 줄 땅이 있었고, 관리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문종은 토지 제도를 정비했다. 그는 경정전시과(經正田柴科)를 시행했다. 이전 왕들이 만들었던 전시과는 불안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하들이 지나치게 많은 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바로잡았다. 땅을 나누는 기준을 다시 세웠다. 관리들에게 공정하게 토지를 나누었고, 세습을 제한했다.
성종, 고려의 기틀을 세우다 고려는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났다고 곧바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왕건이 세운 나라였고, 광종이 왕권을 다졌지만, 아직 고려는 하나가 아니었다.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움직이는 법이 있어야 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야 했다. 성종. 그는 고려의 여덟 번째 왕이었다. 나라는 왕이었지만, 아직 체제가 아니었다. 광종이 칼로 고려를 다듬었다면, 성종은 그 위에 틀을 만들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세웠고, 고려가 진짜 국가가 되도록 했다. 유교 정치, 새로운 질서를 만들다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다. 왕건도, 광종도 불교를 믿었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절이 많았고, 스님들이 힘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나라가 움직일 수는 없었다. 성종은 유교를 택했다. 불교는 백성을 다독이기에 좋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부족했다. 유교는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신하는 왕을 섬기고, 백성은 그 아래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성종이 원한 세상이었다. 그는 전국에 유교 교육을 퍼뜨렸다. 국자감(國子監)을 세우고, 지방에도 학교를 만들었다. 신하들은 책을 읽고, 유학을 공부해야 했다. 과거제를 통해 인재를 뽑고, 유교적 가치를 행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