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쟁은 먼 대륙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의 거리엔 철모가 보였고, 도시엔 깃발이 나부꼈고, 기차는 병사들을 싣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다시 절망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한때 평화를 말하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고요한 대지 위엔 부서진 건물의 잔해만 남았다. 미국은 그 전쟁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들은 지난 전쟁을 기억하고 있었고, 다시는 외국의 피비린내 속으로 자신의 아들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고립은 이념이 되었고, 중립은 방패가 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언제나 문을 두드리지 않고 들어왔다.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 아침의 햇살이 해안선을 비추던 그때, 하늘엔 낯선 비행기들이 나타났고, 포탄은 순식간에 바다를 뒤집었다. 배가 기울었고, 불길이 솟았으며, 그날 수천 명이 죽었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결정이었다. 다음 날, 루스벨트는 의회에서 말했다. “12월 7일, 수치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다시 세계의 전쟁터에 들어섰다. 전쟁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배낭을 꾸렸고, 공장은 총과 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동차 대신 탱크가 조립됐고, 가정의 냄비는 고철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고철을 모았고, 어머니
처음엔 조용했다. 은행 문이 닫혔고,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으며, 신문의 광고란이 비어갔다. 누군가는 해고를 통보받았고, 누군가는 그냥 불러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것이 일시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주식이 조금 떨어졌을 뿐이라 믿었다. 그러나 며칠 후, 월스트리트의 유리창이 깨졌고, 건물 아래로 종이들이 날아다녔다. 그 종이들은 계약서였고, 어음이었고, 사람들의 꿈이었다. 1929년 10월, 미국 경제는 무너졌다. 그 무너짐은 총소리처럼 요란하지 않았지만, 그 여운은 깊고 길었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쫓겨났고, 집세를 내지 못해 거리를 떠돌았으며, 어떤 이는 다시 밭으로 돌아갔지만 땅은 이미 은행의 소유가 되어 있었다. 뉴욕의 골목에도, 아이오와의 벌판에도, 새크라멘토의 다리 아래에도 실업자들이 모여들었다. ‘후버빌’이라 불린 판잣집 마을들. 거기선 이름보다 배고픔이 더 중요했고, 소문보다 빵 한 조각이 더 믿을 만했다. 누군가는 말이 없었고,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도, 대통령도, 처음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미국은 침묵하는 거대한 몸 같았다. 움직이지 않고, 숨을 죽이며, 스스로 무게에 눌려가는 중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어떤 시기는 소리 없이 시작된다. 거대한 혁명도, 전쟁도 없이 단지 거리의 바람이 다르고, 신문의 문장이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사람들의 표정에서 무언가 바뀌었음을 느끼는 시기. 진보주의 시대는 그렇게 왔다. 커다란 환호도 없었고, 하늘을 찌르는 외침도 없었지만, 그 시대는 묵직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속으로, 깊숙이, 조용히. 거리마다 사람이 넘쳤다. 이민자들은 여전히 엘리스 섬을 거쳐 들어왔고, 공장은 여전히 돌아갔고, 굴뚝은 연기를 내뿜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틈이 있다는 걸.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었고, 빈자들은 더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여전히 공장에 있었고, 여성들은 투표하지 못했으며, 흑인들은 법 아래에서조차 동등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아무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도시의 기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링컨 스테펀스, 아이다 터벨, 업턴 싱클레어. 그들은 펜을 들었고, 그 펜은 공장의 내부를, 부패한 시청을, 썩은 고기를 덮은 창고를 드러냈다. ‘머크래커’라 불린 이들은 세상의 진창 속으로 들어가 손에 묻히고서야 진실을 건져 올렸다. 1911년, 트라이앵글
도시는 잠들지 않았다. 창문을 닫아도, 커튼을 내려도, 기계는 밤새 돌아갔다. 금속은 부딪히는 소리로 새벽을 깨웠고, 굴뚝은 낮보다 어두운 연기를 뿜어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조용히 속도를 높였다. 더 이상 총 대신 망치가 울렸고, 군복 대신 작업복이 눈에 띄었다. 남북이 갈라졌던 상처 위로 철도가 깔렸고, 강철이 도시를 세우고, 기름이 밤을 밝혔다. 앤드루 카네기, 존 D. 록펠러, 제이 피어폰트 모건. 이름들은 곧 기업이 되었고, 기업은 하나의 제국이었다. 철강, 석유, 금융. 이들은 미국을 다시 만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몇 명의 부가 수많은 이의 가난을 의미했다. 거리엔 아이들이 있었다. 작은 손으로 섬유를 엮고, 광산 깊숙이 들어갔다. 그들의 눈은 빨랐고, 손은 날쌨지만, 그들에겐 권리가 없었다. 주급은 몇 센트였고, 점심은 건너뛰어야 할 때도 많았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아버지는 철도 위에서,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일했지만 저축이란 단어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유럽의 가난한 도시에서,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은 뉴욕의 엘리스 섬에 발을 디뎠다. 이탈리아, 아일랜드, 독일, 러시아. 그들의 언어는 달랐고, 옷차림은
GS리테일이 유망 스타트업과 손잡고 유통 산업의 미래를 선도할 혁신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다. GS리테일은 30일, 자사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인 ‘더 지에스 챌린지 퓨처 리테일(The GS Challenge, Future Retail)’ 2기 성과공유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GS리테일과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가 공동으로 운영한 스타트업 발굴·육성 사업으로, 6개 스타트업이 최종 선발돼 지난 4개월간 GS리테일의 다양한 사업 영역과 연계된 PoC(사업실증화)를 진행했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GenAI)과 디지털 전환(DX) 기술을 중심으로 한 협업이 주목을 받았다. 성과공유회는 지난 28일 서울 강남 GS타워에서 열렸으며, GS리테일 허서홍 대표를 비롯한 주요 임직원들과 각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협업 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스튜디오랩과 함께 진행한 커머스 상세페이지 자동 생성 프로젝트, 틸다와의 물류 효율화 활동은 실질적인 성과로 현장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이번 2기에 참여한 스타트업은 △스튜디오랩 △틸다 △오아시스 비즈니스 △YesPlzAI △VESSL AI △라온데이터 등으로, 이들은 각각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총성이 울리기 전, 세상은 늘 조용하다. 전운은 대화의 마지막 어미에서 느껴졌고, 신문의 행간에서, 기차역의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무언가가 곧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1861년 4월. 남부의 포탄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섬터 요새에 떨어졌다. 그 한 발이 미국이라는 집의 지붕을 찢었고, 북과 남은 더 이상 한 나라로 불릴 수 없게 되었다. 전쟁은 선언보다 먼저 현실이 되었고, 의심은 증오가 되었으며, 동료였던 이웃은 적군이 되었다. 북부는 연방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남부는 자신들의 권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 중심에는 노예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랫동안 그것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국가의 권리’, ‘자유의 보호’, ‘침해에 대한 저항’이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그 모든 단어 밑에는 한 가지 진실이 있었다.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체제. 에이브러햄 링컨은 조용히 전쟁을 지휘했다. 그는 슬픈 눈을 가졌고, 말보다는 글로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그는 짧은 연설을 남겼다. 단 272개의 단어로 그는 민주주의를 정의했고, 그 말은 대포보다 강하게 퍼져나갔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삼성전자가 생활가전의 미래를 새롭게 정의하며 인공지능 기술과 하드웨어 혁신을 결합한 ‘비스포크 AI’ 라인업을 전격 공개했다. 지난 28일 진행된 ‘웰컴 투 비스포크 AI(Welcome To Bespoke AI)’ 행사에서는 사용자 중심의 연결성과 맞춤형 편의성을 강조한 다양한 AI 가전 제품과 서비스가 대거 소개됐다. 문종승 삼성전자 DA사업부 개발팀 부사장은 “삼성전자는 단순한 기기 제조를 넘어 사용자의 삶을 이해하고 돌보는 AI 홈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기술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AI 홈, 생활을 아우르는 연결의 중심이 되다 삼성전자는 가전제품에 탑재된 스크린을 ‘AI 홈’의 중심으로 활용해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통한 가전 모니터링과 제어 기능을 강화했다. 다양한 통신 프로토콜을 지원하는 AI 홈은 허브 없이도 IoT 기기와의 연동을 가능하게 해 조명, 스위치까지 집 안의 모든 기기를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냉장고, 세탁기, 오븐 등 점차 다양한 제품군에 스크린을 탑재하면서 사용자 접근성과 실용성이 한층 강화됐다. AI 음성인식 기능도 진일보했다. 목소리로 사용자 개인을 식별하
그들은 대지를 더 넓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먼 평원과 높고 하얀 산맥, 지평선 너머로 지는 태양은 이제 단지 자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회였고, 땅이었고, 신이 내린 권리처럼 여겨졌다.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말이 생겼다. 사람들은 그 말에 매달려 서쪽으로 떠났다. 지도가 없는 곳에 길을 내고, 숲을 밀고, 땅에 말뚝을 박았다. 소를 몰고, 가족을 이끌고, 총을 지닌 채 그들은 이동했다. 모닥불 곁에서 누군가는 기도했고, 누군가는 옛집을 그리워했으며, 누군가는 이름 없는 계곡에 묻혔다. 그러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땅 위에 정착지를 세웠고, 정착지는 마을이 되었으며, 마을은 주가 되었다. 1830년대, 앤드루 잭슨. 그는 거칠었고, 직접적이었으며, 민중의 대통령이라 불렸다. 그는 법보다는 의지를 믿었고, 귀족보다는 평민의 표를 따랐다. 그의 통치는 사랑받았고,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인디언들을 밀어냈다. “눈물의 길”이라 불리는 강제 이주는, 체로키 족의 발자국 위에 눈물과 뼈를 남겼다. 사람들은 길을 만들었지만, 그 길 위엔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대지는, 정복의 방식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영토
사람들은 낡은 깃발을 내리고, 새로운 별을 달기 시작했다. 그 별은 하나의 빛이 아니라, 열세 개의 빛이었다. 각기 다른 땅과 이익, 전통과 방식을 가진 주들이, 겨우 하나의 이름을 공유하며 미국이라는 실험을 시작했다. 1789년 봄, 조지 워싱턴이 취임했다. 그는 말이 없었고, 상징이 되었으며, 곧 제도가 되었다. 백마를 타고 도시에 입성하지 않았고, 사치를 걸치지도 않았다. 그는 왕이 아니었기에 더욱 존경받았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은 낯설었지만, 그가 앉은 자리는 단정했고, 조용했다. 수도는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으로 옮겨졌다. 강변의 땅에 흙과 돌을 얹고, 건물을 올리며 사람들은 ‘국가’라는 개념에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백악관은 미완성이었고, 거리엔 진흙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이제는 말이 아닌 제도가 나라를 지켜줄 거라는 희망을. 그러나 나라는 하나였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둘 이상이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중앙정부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고, 토머스 제퍼슨은 주(州)의 자율과 농민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논쟁은 담백하지 않았다. 그 속에는 철학과 계급, 도시와 농촌, 금융과 토지라는 오래된 균열이 숨겨져 있었다
여름이었다. 그리고 그 여름은 그들 생애 가장 조용하지 않은 여름이었다. 땅 위에 흩어진 식민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지녔던 소속과 습관, 말과 법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그들이 한때 경외심으로 바라보던 왕은, 이제는 먼섬 彼岸에 앉아 세금과 명령만을 보낼 뿐이었다. 왕의 문장은 더 이상 권위가 아니었고, 의회의 결정은 식민지 사람들의 고통 위에 올라앉은 듯했다. 1776년 7월. 필라델피아. 한 회의실 안, 문이 닫히고, 창문 사이로 더운 바람이 들어왔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한 문서가 조용히 읽혀졌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는 그들에게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여하였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방 안의 사람들은 숨을 멈췄다. 종이는 가벼웠지만, 그 말은 무거웠다. 그 말은 전쟁을 뜻했고,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출발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알았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과거의 복종과 현재의 불만 사이, 그들은 미래를 걸고 결단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대지는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농부들은 총을 들었고, 대장장이들은 칼을 만들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