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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대본

1분대본, 조선 영조

※조선 영조

장면 1: 출생과 왕세자 책봉

내레이터: "영조(1694년~1776년)는 숙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로 태어나 1699년 연잉군에 봉해졌습니다. 1721년 경종의 건강이 악화되자 왕세제로 책봉되었습니다."

[어린 영조가 궁궐에서 공부하는 장면과 왕세자 책봉 장면]

 

장면 2: 즉위와 탕평책

내레이터: "1724년 경종의 승하로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탕평책을 실시하여 붕당 간의 대립을 완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영조가 즉위식을 하고, 신하들과 회의하는 장면]

영조: "모든 붕당의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를 안정시키자."

 

장면 3: 균역법 시행

내레이터: "영조는 균역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영조가 법령을 공포하고, 백성들이 기뻐하는 장면]

백성: "군역 부담이 줄어 삶이 나아졌습니다, 전하!"

 

장면 4: 신문고 제도 부활

내레이터: "영조는 신문고 제도를 부활시켜 백성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고자 하였습니다."

[신문고를 두드리는 백성의 모습과 영조가 이를 듣는 장면]

영조: "모든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억울함을 풀어주겠다."

 

장면 5: 문화 발전

내레이터: "영조는 학문과 인쇄술을 장려하여 많은 서적을 편찬하고, 청계천을 준설하여 홍수 피해를 예방하였습니다."

[영조가 서적을 편찬하고, 청계천을 정비하는 장면]

학자: "왕께서 학문을 장려하신 덕에 많은 지식이 축적되었습니다."

 

장면 6: 비극적인 사건

내레이터: "하지만 영조의 치세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얼룩졌습니다.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영조가 괴로워하는 장면과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는 장면]

영조: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장면 7: 평가

내레이터: "영조는 탕평책과 균역법으로 조선의 발전에 기여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치세에 큰 비극으로 남았습니다."

[영조의 초상화와 함께 내레이터의 마지막 말]

내레이터: "영조의 업적과 비극은 조선의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