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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김부식, 고려의 역사를 기록하다

 

김부식, 고려의 역사를 기록하다


고려의 땅은 넓었고, 바람은 거칠었다. 왕이 앉아 있는 개경에서는 조용한 듯했지만, 나라 곳곳에서는 새로운 변화의 기운이 일고 있었다. 누군가는 고려를 더 강하게 만들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고려의 뿌리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김부식은 후자였다. 그는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고려는 이미 오래된 나라였고, 그 안에서 질서가 필요했다. 그는 변화를 멀리하고, 안정 속에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항상 바람처럼 불었다. 그는 그 바람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유교적 통치를 지키다
김부식은 고려의 문신이었다. 그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었다. 그는 고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고, 그것을 지키려 했다. 고려는 본래 불교의 나라였다. 그러나 김부식은 유교를 기반으로 한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교의 가르침이 곧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 믿었다. 군주는 백성을 다스리고, 신하는 군주를 보좌해야 한다. 그러려면 문벌귀족이 중심이 되어야 했다. 그들이 왕과 함께 고려를 이끌어야 나라가 안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변화는 항상 불쑥 찾아왔고,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이들도 있었다. 김부식은 그것을 경계했다.

 

묘청과의 대립, 그리고 전쟁
그때 묘청이 나타났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말하고 있었다. 고려가 더 강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서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왕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중국 송나라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중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김부식은 반대했다. 고려는 이미 잘 굴러가고 있었다. 급격한 변화는 혼란을 가져올 뿐이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왕과 신하들이지, 승려가 나설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왕은 망설였다. 인종은 강한 왕이 아니었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묘청은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김부식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서경으로 갔다.
그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냉정했다. 반란군을 무너뜨렸고, 서경은 함락되었다. 묘청은 죽었다. 그리고 그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묘청의 난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두고 벌어진 싸움이었다. 김부식은 이겼지만, 고려의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삼국사기를 남기다, 고려의 역사를 기록하다
김부식은 전쟁에서 이겼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고려가 나아갈 길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봐야 했다. 그는 역사를 기록하기로 했다.
그가 남긴 것이 바로 《삼국사기(三國史記)》였다. 신라, 고구려, 백제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었다. 그는 고려가 그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삼국사기》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김부식의 사상이 담긴 기록이었다. 그는 신라를 높이 평가했다. 신라는 유교적 통치 질서를 유지했던 나라였다. 반면 고구려와 백제는 그에 비해 덜 체계적이었다고 보았다.
그의 기록은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려뿐만 아니라 조선에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한 기록은 아니었다. 그는 신라 중심의 시각을 가졌고,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삼국의 역사를 온전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승리한 자의 기록을 남겼고, 그것이 고려의 공식적인 역사가 되었다.

 

김부식이 남긴 것들
그는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는 조용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고려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삼국사기》. 고려 최초의 본격적인 역사서.
묘청의 난 진압. 고려의 문벌귀족 중심 체제 유지.
유교적 정치 질서 확립. 고려의 안정된 통치 기반 마련.

 

그는 왕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려를 지탱한 사람이었다. 그는 역사를 남겼고, 그 역사가 고려를 이어나가게 했다.
1151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기록은 남았다. 고려는 흔들렸지만, 그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김부식을 기억한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지 않았지만, 고려가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었다. 그는 혁신가가 아니라, 지켜내는 자였다. 그리고 고려는 그의 기록 위에서 계속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