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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넷과 장유유서 — 세대의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서

 

한때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사회의 기둥이었다. 나이 많은 이가 존중받고, 젊은 세대는 그 권위를 배우며 따랐다. 그러나 지금의 인터넷은 그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나이가 아닌 정보의 속도와 표현의 능력이 힘이 된다. 타이핑이 빠르고, 트렌드를 읽는 감각이 뛰어난 젊은 세대가 온라인의 주도권을 잡는다. 반면 연륜으로 쌓은 경험과 판단은 ‘댓글 몇 줄’에 묻히기 쉽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세상은 나이를 ‘숫자’로만 취급한다. 유튜브나 SNS에서는 열다섯 살이 백만 구독자를 거느릴 수도 있고, 칠십대가 조회수 30을 넘기지 못해 잊혀지기도 한다.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세대 역전이다. ‘연장자’는 오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읽을 수 있었지만, 인터넷은 그 경험의 축적보다 즉각적인 공감과 반응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 결과, 나이가 많을수록 불리한 구조가 되어버렸다.

 

물론 세대 간 단절을 전적으로 인터넷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 단절을 ‘가속화’시켰다. 과거에는 세대가 다르더라도 같은 마을,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며 살아야 했다. 지금은 세대별로 머무는 공간 자체가 다르다. 20대는 유튜브와 틱톡, 50대는 네이버와 카카오톡에 머문다. 서로의 말투, 밈, 관심사가 다르다. 젊은 세대는 “꼰대”라 하고,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말로 벽을 쌓는다.

 

장유유서의 본뜻은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을 공경하라”가 아니다. ‘유서(有序)’ — 질서가 있다는 말은 서로의 역할이 다르다는 뜻이었다.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세대에게 경험을, 젊은 세대는 새로운 시각과 에너지를 나누는 상호의존적 관계였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 균형을 깨뜨렸다. 경험의 권위가 사라지고, 알고리즘의 권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조회수와 팔로워 수가 새로운 서열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장유유서의 시대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단지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유튜브에서 중년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인생 경험을 콘텐츠로 풀며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또 다른 형태의 장유유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약점이 아니라, ‘다른 서사’를 가질 수 있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위계가 아니라 존중의 방식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예전의 장유유서는 일방적이었다. “나보다 나이 많으니 들어라”는 권위의 언어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장유유서는 ‘서로의 세계를 인정하는 겸손’이어야 한다. 젊은 세대는 어른의 경험을 단순한 잔소리로 치부하지 말아야 하고,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상의 속도를 ‘무례’로만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온라인의 무한한 대화 속에서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예의와 존중 위에 선다.

 

인터넷은 질서를 파괴하는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장유유서의 정신을 되살리는 길은 과거의 권위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이다. 나이는 더 이상 권력의 근거가 아니지만, 세대를 잇는 다리의 재료는 여전히 사람이다. 결국 인터넷 시대의 장유유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고, 서로의 세계를 배워라. 나이가 아니라, 이해가 사람을 어른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