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대지를 더 넓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먼 평원과 높고 하얀 산맥, 지평선 너머로 지는 태양은 이제 단지 자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회였고, 땅이었고, 신이 내린 권리처럼 여겨졌다.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말이 생겼다. 사람들은 그 말에 매달려 서쪽으로 떠났다. 지도가 없는 곳에 길을 내고, 숲을 밀고, 땅에 말뚝을 박았다. 소를 몰고, 가족을 이끌고, 총을 지닌 채 그들은 이동했다. 모닥불 곁에서 누군가는 기도했고, 누군가는 옛집을 그리워했으며, 누군가는 이름 없는 계곡에 묻혔다. 그러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땅 위에 정착지를 세웠고, 정착지는 마을이 되었으며, 마을은 주가 되었다. 1830년대, 앤드루 잭슨. 그는 거칠었고, 직접적이었으며, 민중의 대통령이라 불렸다. 그는 법보다는 의지를 믿었고, 귀족보다는 평민의 표를 따랐다. 그의 통치는 사랑받았고,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인디언들을 밀어냈다. “눈물의 길”이라 불리는 강제 이주는, 체로키 족의 발자국 위에 눈물과 뼈를 남겼다. 사람들은 길을 만들었지만, 그 길 위엔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대지는, 정복의 방식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영토
사람들은 낡은 깃발을 내리고, 새로운 별을 달기 시작했다. 그 별은 하나의 빛이 아니라, 열세 개의 빛이었다. 각기 다른 땅과 이익, 전통과 방식을 가진 주들이, 겨우 하나의 이름을 공유하며 미국이라는 실험을 시작했다. 1789년 봄, 조지 워싱턴이 취임했다. 그는 말이 없었고, 상징이 되었으며, 곧 제도가 되었다. 백마를 타고 도시에 입성하지 않았고, 사치를 걸치지도 않았다. 그는 왕이 아니었기에 더욱 존경받았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은 낯설었지만, 그가 앉은 자리는 단정했고, 조용했다. 수도는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으로 옮겨졌다. 강변의 땅에 흙과 돌을 얹고, 건물을 올리며 사람들은 ‘국가’라는 개념에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백악관은 미완성이었고, 거리엔 진흙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이제는 말이 아닌 제도가 나라를 지켜줄 거라는 희망을. 그러나 나라는 하나였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둘 이상이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중앙정부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고, 토머스 제퍼슨은 주(州)의 자율과 농민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논쟁은 담백하지 않았다. 그 속에는 철학과 계급, 도시와 농촌, 금융과 토지라는 오래된 균열이 숨겨져 있었다
여름이었다. 그리고 그 여름은 그들 생애 가장 조용하지 않은 여름이었다. 땅 위에 흩어진 식민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지녔던 소속과 습관, 말과 법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그들이 한때 경외심으로 바라보던 왕은, 이제는 먼섬 彼岸에 앉아 세금과 명령만을 보낼 뿐이었다. 왕의 문장은 더 이상 권위가 아니었고, 의회의 결정은 식민지 사람들의 고통 위에 올라앉은 듯했다. 1776년 7월. 필라델피아. 한 회의실 안, 문이 닫히고, 창문 사이로 더운 바람이 들어왔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한 문서가 조용히 읽혀졌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는 그들에게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여하였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방 안의 사람들은 숨을 멈췄다. 종이는 가벼웠지만, 그 말은 무거웠다. 그 말은 전쟁을 뜻했고,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출발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알았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과거의 복종과 현재의 불만 사이, 그들은 미래를 걸고 결단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대지는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농부들은 총을 들었고, 대장장이들은 칼을 만들었으며
대지는 아직 아무 이름도 갖지 못한 채 있었다. 나무들은 계절이 흐를 때마다 단정히 잎을 갈아입었고, 강물은 큰 바위에 부딪히며 먼 곳으로 흘러갔다. 그곳은 인디언이라 불린 이들의 땅이었다. 그들은 물소리를 들으며 사냥을 했고, 별자리를 따라 옮겨 다녔다. 울창한 숲과 푸른 초원이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조용히 피어오른 모닥불은 마을의 중심이었다. 그 평화로운 낯섦 속으로 바람을 거슬러온 이방의 배들이 닿았다. 영국에서, 프랑스에서, 네덜란드에서 온 남자들은 낯선 바다를 건너온 자부심으로 가슴을 부풀리고 있었고, 그들이 내딛는 첫 걸음마다 대지는 흔들렸다. 1607년, 제임스타운. 버지니아의 해안에 첫 정착촌이 세워졌다. 허기진 배들의 짐칸에서 꺼낸 도끼와 못, 그리고 믿음의 이름으로 불린 성경책은 대지 위에 첫 흔적을 남겼다. 나무는 베어졌고, 말뚝은 박혔으며, 토담은 쌓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 땅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후도, 작물도, 이웃도. 여름은 더웠고, 겨울은 길었다. 식량은 쉽게 썩었고, 말은 잘 통하지 않았다. 굶주림과 질병이 그들의 마을을 삼켰다. 처음 100명 중 절반이 첫 해를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 땅을 배워나갔다. 인디언들과 불안한 동
▶태양인 폐가 크고 간은 작다. 목덜미가 굵고 실하다. 머리가 크고 허리 아랫부분이 약하다. 사교성이 좋고 과단성이 있어 사회적 관계에 능력이 있다. 성격은 활달하나 마음이 조급하고 화를 잘 낸다. 적당한 직업: 지도자, 경영자, 발명가, 창업가, 정치인, 외교관, 기획자, 전략가, 스타트업 창업 등 대담한 도전이 필요한 분야 학습법은 좋아하는 과목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니, 스스로 학습 설계를 잘해서 반드시 실천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태음인 간이 크고 폐가 작다. 상체가 약하고, 하체가 튼튼하다. 허리가 굵은 반면에 목덜미가 가늘다. 대개는 살이 쪘고, 체격이 좋으며 키가 크다. 성격은 동작은 느리며 참을성이 있다. 어느 곳에서나 잘 적응한다. 적당한 직업: 공무원, 행정직, 연구원, 학자, 회계사, 금융 전문가, 의사, 한의사, 약사, 건축가, 엔지니어 학습법은 암기력이 뛰어나며, 끈기 있고, 자료 정리를 잘한다. 한가지 일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아 한 과목에만 집중하기 어려우니 그날 배운 것을 그날 복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서 관심이 분산되는 것을 막아야 효과적이다. 경쟁 의식을 갖도록 모둠 학습이 좋다. ▶소양인 보통의 체격에 여윈
1. 진입 장벽이 낮고 준비가 쉬운 라면 전문점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아이템 중에서 라면 전문점은 진입 장벽이 낮고 비교적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라면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식이고, 조리 방식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초보 창업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게다가 식재료가 단순하고 저장 기간도 긴 편이라 재고 관리도 수월한 편이다. 2. 작은 공간, 적은 인력으로도 운영 가능 무엇보다 라면 전문점은 작은 공간에서도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일반적인 외식업에 비해 초기 투자비용이 적게 들며, 인테리어나 주방 설비 역시 간단한 수준으로 준비해도 충분하다. 혼자서도 운영이 가능하므로 인건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조리 시간이 짧고 손님 회전율도 빠른 편이어서 하루 매출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여지도 있다. 3. 저가 메뉴의 한계, 부가 수익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라면은 기본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음식이기 때문에, 단순히 라면만 팔아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부가적인 메뉴나 차별화된 서비스가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수제 라면이나 이색적인 토핑, 외국식 라면 스타일 등을 도입해 독창적인 메
제1장 신대륙의 발견과 식민지 시대의 시작 1. 먼 바다의 끝, 낯선 땅의 첫 발자국 땅은 거기 있었다. 아득한 대양 건너, 안개 낀 해안선 너머로 숲은 숲대로, 강은 강대로 흐르고 있었고, 그 속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해가 뜨면 사냥에 나섰고, 해가 지면 불가에 둘러앉아 조상의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 하지만 그 평온한 계절 속에 바람이 방향을 틀던 어느 해, 돛단배가 들이닥쳤다. 유럽의 눈으로는 ‘발견’이었지만, 이 땅을 딛고 살아온 이들에겐 침입이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깃발을 달고 카리브 해에 다다랐을 때, 그는 아시아에 도달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발을 디딘 곳은 아메리카 대륙, 유럽이 이름 붙이지 못한 신세계였다. 콜럼버스는 처음으로 대륙을 ‘알아본’ 자였을 뿐, 이 땅은 이미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고향이었다. 아즈텍, 마야, 이누이트, 이로쿼이… 나무와 물, 태양과 별과 말을 나누던 이름들이 그 땅 위에 수없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쇠로 만든 갑옷을 입고 화승총을 든 유럽인들은 그들이 믿는 신의 이름을 내걸고, 무자비한 손을 뻗었다. 콜럼버스는 단지 서막이었다. 수많은 탐험가와 정복자들이 몰려왔
아침마다 분주하게 문을 여는 동네의 반찬가게는 누군가에게는 단골집이고, 누군가에게는 하루 식사를 해결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곳에서 파는 반찬은 거창하지 않다. 달걀말이, 멸치볶음, 무생채, 김치볶음 같은 익숙한 메뉴들이지만, 그 안엔 정성과 시간이 담겨 있다. 그래서 요즘엔 이 반찬가게가 소자본 창업 아이템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 반찬가게를 열기 위해 큰돈이 드는 건 아니다. 점포 임대료와 기본적인 주방 기기, 재료비 정도면 시작이 가능하다. 특히 10평 안팎의 작은 공간에서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예비 창업자들에게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무엇보다 음식 솜씨가 있다면, 그 자체가 경쟁력이다. 요리를 잘한다는 건, 곧 단골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운영 방식도 다양하다. 동네 상권에 맞춰 매장을 차리는 방법도 있고, 최근에는 배달 위주로 하는 온라인 중심의 반찬가게도 많아졌다. 배달 앱이나 SNS를 활용해 고객과 소통하고 주문을 받아 출근 전, 퇴근 후 시간대에 맞춰 반찬을 직접 배송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매장 임대료를 줄일 수 있어 초기 자금 부담도 덜 수 있다. 단순히 반찬만 파는 것
▶조선시대 고려 말의 풍경은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노인의 얼굴과도 같았다. 산과 강은 그대로였지만, 사람들의 마음속 질서는 이미 무너져 있었고, 나라의 기둥이었던 토지는 이미 몇몇 자의 손에 집중돼 있었다. 농민은 밭에서 밀려났고, 관리는 절에 뇌물을 바치고, 사찰은 땅을 늘렸다. 그것은 나라가 아니라 거대한 사유재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성계는 그 틈을 정확히 읽었다. 명나라의 부름을 받은 출정길에서, 그는 칼을 거두었다. 위화도에서 회군한 그는 '충신'에서 '역적'이 되었고, 곧 ‘새로운 왕조의 개창자’가 되었다. 1392년, 고려가 내려앉고 조선이 세워졌다. 조선은 ‘이성계의 나라’로 기억되지만, 초반의 설계자는 정도전이었다. 그는 고려의 귀족 정치를 끝내고, 새로 태어나는 나라에 ‘신권 중심의 유교 국가’를 꿈꾸었다. 고려가 왕실과 불교의 나라였다면, 조선은 문신과 유교의 나라였다. 정도전은 국호를 ‘조선’으로 정했고,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그는 법전을 만들고, 종묘와 사직의 틀을 새로 세웠으며, 무엇보다 왕이 절대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신하의 권한을 분산시켰다. 그는 이 나라의 미래를,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제도로
▶아이오타(IOTA) 제작 배경 아이오타(IOTA)는 사물인터넷(IoT) 환경에서의 데이터 및 가치 전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프로젝트다. 4차 산업혁명 흐름 속에서 기기 간 통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블록체인 기술이 가지는 확장성 한계와 수수료 문제는 IoT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에 따라 아이오타는 블록체인이 아닌 새로운 구조인 탱글(Tangle)을 기반으로 한 분산형 네트워크를 도입, 수수료 없는 초경량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플랫폼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는 블록체인의 대안으로서,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데이터 전송 기술을 필요로 하는 미래형 산업 생태계를 겨냥하고 있다. 총발행량 아이오타 코인의 총발행량은 약 27억 개로 고정되어 있다. 이 수치는 처음부터 전체 발행량이 한 번에 생성되었고, 추가 발행이 없는 구조를 갖는다. 이를 통해 디플레이션 우려나 인위적인 공급 조절 없이 투명한 유통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 것이 특징이다. 연구팀 아이오타는 독일에 본사를 둔 아이오타 재단(IOTA Foundation)에 의해 개발 및 운영되고 있다. 재단은 비영리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럽 전역의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