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길목에서
길 위에 떨어진 낙엽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며 점점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쯤, 우리는 겨울의 길목에 서 있음을 느낀다. 아직 완전히 겨울은 아니지만, 그 경계에 머무르며 겨울이 다가옴을 느끼는 시기다. 가을이 남긴 따스한 여운이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가운 공기가 채워 나간다.
겨울의 길목에서, 문득 나무들을 바라본다. 옷을 벗어 던진 나무들은 한결 가벼워진 몸을 드러내고 서 있다. 녹음이 무성하던 여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 고요한 자태가 겨울의 냉기를 품어내며 어떤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다. 허전함 속에서도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비워짐'의 의미일 것이다.
겨울의 길목은 비워진 시간이다. 계절이 바뀌며 지난 계절의 흔적을 하나씩 덜어내듯, 나 또한 나의 마음을 비워낼 준비를 한다. 쓸모없어진 것들을 떠나보내고, 내 안에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길 수 있는 시간이 겨울의 문턱에서 주어지는 듯하다. 그 과정에서 내면의 소리도 조금씩 또렷해진다. 마음 깊숙이 가라앉은 감정이나 생각들이 서서히 위로 올라오며, 그것들을 하나씩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이맘때쯤이면, 나는 늘 내 발걸음을 조금 더 천천히 옮기게 된다.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비워진 거리와 차분해진 자연 속에서 사색에 잠긴다. 이 고요함이 마음속 빈 공간을 채우는 것처럼 느껴져,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겨울은 모든 것을 멈추고 천천히 숨을 고르게 해 주는 계절이다. 무언가를 쫓아 달려왔던 한 해를 돌아보며 나를 재정비할 수 있는 이 시기가 오히려 소중하게 느껴진다.
겨울의 길목에 서서, 나는 새하얀 눈이 쌓일 날을 기다린다. 잔잔하게 내리는 눈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감싸 안아주는 것 같다. 지난 시간을 덮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그 하얀 옷을 입은 겨울은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가짐을 선물하는 듯하다.
그래서 오늘, 겨울의 길목에 선 나는 문득 삶의 잔잔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