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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왜 빚은 눈덩이가 되고, 자산은 눈사람처럼 녹는가

 

가계부채 이야기는 너무 오래 들어서 식상하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빚은 늘 식상할 만큼 반복해서 들려오는 그 경고를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빚은 언제나 불어난다. 우리가 외면하든 말든, 정부가 규제를 걸든 풀든, 빚이라는 존재는 흡사 내리막의 눈덩이처럼 자기 스스로를 키워간다. 반대로 자산은 그렇지 않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심지어 우리가 가진 시간과 체력까지도 기온이 오르면 녹아내리는 눈사람처럼 지켜보지 않으면 금세 형태를 잃는다. 이 두 가지의 비대칭은 단순한 금융 지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빚과 자산은 각각 다른 속성을 가진 두 개의 세계처럼 움직이고, 우리가 경제를 이해하는 방식은 이 차이를 제때 알아보는 데서 출발한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자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 단순한 원리가 실제 삶에 가져오는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깊다. 이자는 시간을 먹고 자란다. 하루가 지나면 그 하루의 이자가 더해지고, 한 달이 지나면 그 달의 이자가 원금을 다시 밀어 올린다. 여기에 예기치 못한 실직이나 병원비 같은 변수가 겹치면, 이제부터는 이자에 이자가 붙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누구나 제법 가벼운 마음으로 빚을 짊어진다. 하지만 눈덩이도 처음에는 주먹만 하다. 어느 순간 더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크기가 되었을 때, 우리는 뒤늦게 그것의 속성을 깨닫는다. 빚은 가만히 있어도 불어나지만, 상환 능력은 가만히 있다고 늘지 않는다. 여기에 가장 큰 불균형이 있다.

 

반대로 자산은 눈사람의 속성을 지닌다. 키워놓기까지는 손이 많이 가고, 형태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관심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지키는 데 실패하는 건 한순간이다. 예금 금리는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고, 주식은 하루 아침에 하락할 수 있다. 부동산마저도 완전한 안전지대가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산이 불어나는 것을 당연한 흐름으로 오해하지만,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경제가 우연히 만들어낸 평균값일 뿐이다. 개개인의 삶 속에서는 재산이 녹는 순간이 훨씬 빈번하게 찾아온다.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오른다. 투자 수익률은 들쑥날쑥한데 생활비는 꾸준히 상승한다. 소득은 직선이고 비용은 곡선이 된다. 이 구조 속에서 자산은 지켜내지 않으면 금세 형태를 잃는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 두 가지의 속성이 더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고금리 환경은 빚을 더욱 빠르게 불린다. 단순히 원리금 상환 부담이 아니라, 심리적 압박이 가계의 여유를 파고든다.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이면 경제는 다시 둔화되고, 둔화된 경제는 또다시 소득 증가를 막는다. 빚이 커지는 속도는 한계가 없지만,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는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반면 자산은 변동성의 시대에 노출되어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자산의 안전 영역은 줄어든다. 쌓아올린 눈사람이 예측하지 못한 온도 변화 앞에서 녹는 것처럼, 자산의 가치도 세계 경제의 작은 충격 하나에 흔들린다.

 

특히 청년 세대가 이 구조를 가장 날카롭게 체감한다. 학자금 대출로 시작해 전세자금 대출, 신용대출로 이어지는 빚의 고리는 시작점부터 경사도가 너무 가파르다. 자산을 축적해내기 전에 먼저 빚의 눈덩이가 굴러가기 시작하고, 그 사이 자산의 가격은 이미 멀리 달아나 있다. 기성세대가 우연히 누렸던 자산 가격 상승의 시대가 끝난 뒤 출발선에 선 이들에게는, 빚의 속성은 더욱 무겁게 작용한다. 눈덩이는 이미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있는데, 눈사람은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녹고 있다.

 

빚은 우리에게 상환 의무라는 이름의 시간을 강제로 건다. 자산은 우리에게 선택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부여한다. 문제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잃고 있다는 데 있다.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자산은 좀처럼 축적되지 않는다. 반대로 시간이 부족할수록 빚은 빠르게 자라난다. 이 차이는 경제 문해력 이전에 인간의 삶의 구조와 직결된 문제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왜 빚의 속성을 경계하면서도, 자산 관리의 속성에는 둔감한가. 빚은 공격적으로 다가오지만 자산은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빚을 줄이는 행위는 당장 효과가 보이지만, 자산을 늘리는 행위는 장기간의 무표정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기적인 불안에 민감하고, 장기적인 성장에는 게으르다. 하지만 경제는 늘 반대로 움직인다. 장기적인 축적이야말로 유일한 방패이며, 단기적인 대응은 대부분의 경우 미봉책에 그친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눈덩이는 멈춰세우지 않으면 끝없이 굴러가고, 눈사람은 지키지 않으면 금세 녹아내린다. 이 두 세계의 속성을 이해하는 순간, 빚의 속도와 자산의 속도를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문제는 언제나 시간 싸움이다. 시간을 우리 편으로 만들지 못하는 한, 우리는 빚의 속성과 자산의 속성 사이에서 영원히 밀리게 된다. 경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삶을 어떤 구조로 설계하느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