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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문종, 고려의 황금시대를 열다

 

고려 문종, 고려의 황금시대를 열다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라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왕들은 다투지 않았고, 호족들의 힘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혼란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었다. 고려는 이제 무엇이 되어야 할까?
문종은 그 질문에 답하려 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아는 왕이었다.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글을 읽고, 사람을 살폈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혼란보다는 안정을 원했다. 그는 고려를 강한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강함이란 단순한 군사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강한 법, 강한 문화, 강한 제도가 필요했다.
그는 그것을 만들었다.

 

경정전시과, 나라의 틀을 다듬다
나라를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고려는 전쟁을 피하고 있었지만, 전쟁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신하들에게 줄 땅이 있었고, 관리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문종은 토지 제도를 정비했다. 그는 경정전시과(經正田柴科)를 시행했다. 이전 왕들이 만들었던 전시과는 불안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하들이 지나치게 많은 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바로잡았다.
땅을 나누는 기준을 다시 세웠다. 관리들에게 공정하게 토지를 나누었고, 세습을 제한했다. 나라의 경제가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신하들은 더 이상 필요 이상의 땅을 가질 수 없었다. 대신 나라를 위해 일해야 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었다. 고려가 더욱 체계적인 나라가 되었다는 증거였다.

 

유교 정치, 문화를 꽃피우다
고려는 본래 불교 국가였다. 그러나 성종 때부터 유교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문종은 그것을 더욱 확고히 했다. 그는 유교를 나라의 근본으로 삼고 싶었다.
그는 과거제를 더욱 강화했다. 관리를 뽑는 기준이 명확해졌고, 유학을 공부한 사람만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공부하지 않으면 권력을 잡을 수 없는 나라. 문종이 원한 고려의 모습이었다.
그는 교육 기관을 늘렸다. 국자감의 위상을 높였고, 지방에도 학교를 세웠다. 백성들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이제 고려에서 학문은 귀족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배우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의 통치는 안정적이었다.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고, 호족들도 순응했다. 고려는 학문과 예술이 번성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것이 고려의 황금시대였다.

 

대외 관계, 외교로 나라를 지키다
문종은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북쪽에는 여진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거란과 송나라가 있었다.
그는 외교를 택했다. 거란과의 관계를 유지했고, 송나라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무리하게 확장을 시도하지 않았다. 고려는 충분히 강했지만, 불필요한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대신 문종은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그는 군대를 약화시키지는 않았다. 나라가 부유해질수록 침략의 위협은 커지기 마련이었다. 문종은 국방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수도 개경을 더욱 강화했고, 국경 지역에도 방어 체계를 갖추었다.
그는 싸우지 않았지만, 싸울 준비는 항상 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불교의 부흥, 문화를 꽃피우다
유교를 강조했지만, 불교를 버리지 않았다. 고려는 여전히 불교 국가였고, 문종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불교를 보호하고, 사찰을 지원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가 세운 사찰 중 대표적인 것이 흥왕사(興王寺)였다. 그는 이 절을 통해 불교의 위상을 높였고, 동시에 국가의 안정을 기원했다. 불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었다.
또한 그는 불경을 간행하고, 고려의 불교 예술을 더욱 발전시켰다. 고려의 불교 문화는 이 시기에 더욱 화려해졌다. 불화와 불상, 사찰 건축이 발전했다.
고려청자도 이 시기에 정교한 기술로 발전했다. 단순한 생활 도구를 넘어 예술 작품이 되었다. 문종은 이러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문종이 남긴 것들
문종의 시대는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평화는 단순한 운이 아니었다. 그는 나라를 정비했고, 체제를 완성했다. 고려는 이제 완전한 국가가 되었다.
그가 남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려를 지탱하는 뼈대가 되었다.
경정전시과. 고려의 경제를 안정시킨 제도.
국자감과 지방 교육. 학문의 발전.
흥왕사. 불교와 국가의 조화를 상징하는 사찰.
고려청자. 고려 문화의 절정을 보여 주는 예술품.
문종은 전쟁에서 영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고려의 기틀을 다진 왕이었다.
1076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새로운 고려가 남아 있었다. 안정된 나라, 체계적인 법, 발전하는 문화. 고려는 이제 성숙한 왕국이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문종을 조용한 왕으로 기억한다. 그는 소리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깊고 강했다.
그는 고려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고려는 그의 유산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