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shutdown, 일시적 업무정지)’이라는 단어는 원래 기계나 시스템의 작동을 완전히 멈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를 대상으로 쓰일 때, 그 단어는 단순한 중단이 아니라 ‘정치의 실패’를 의미한다. 2025년 10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미국은 다시금 이 단어 앞에 서 있다. 연방정부의 일부 기능이 멈추고, 수십만 명의 공무원들이 무급으로 집에 머물고 있으며, 국립공원과 연구기관, 행정 서비스가 문을 닫았다. 이것은 단지 행정적 마비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시스템이 스스로의 신뢰를 잠시 내려놓는 일이다. 미국의 정부 셧다운은 대통령제가 가진 구조적 약점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다. 헌법상으로 행정부는 예산을 집행할 권한이 없고, 모든 예산은 의회가 통과시켜야만 한다. 따라서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행정부는 돈을 쓸 수 없고 정부는 문을 닫는다. 이 논리 자체는 ‘견제와 균형’의 이상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의 셧다운은 그 균형이 ‘갈등의 정당화’로 변질된 모습이다. 여당과 야당은 서로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걸고 예산안을 무기로 삼는다. 한쪽은 재정긴축을, 다른 한쪽은 복지확대를 주장하며, 그 사이에서 국가는 일시적으로 숨을 멈
조용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단순히 한 가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가 함께 깨어난다. 그는 한 세대를 노래했고, 또 그 노래로 다음 세대를 키웠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으면 흑백의 항구 풍경이 떠오르고, “단발머리”를 들으면 청춘의 거리가 살아난다. 조용필의 노래는 그 시절의 공기를 품은 기록이자, 세월의 흐름을 견뎌낸 한 사람의 목소리다. 조용필은 1950년대에 태어나 1970년대의 혼란 속에서 음악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그의 등장은 단순한 가수의 데뷔가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의 근대화’였다. 트로트와 포크, 록과 발라드, 심지어 팝까지 — 그는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음악이 시대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의 대표곡들에는 단순한 감정의 반복이 없다. 노래 한 곡마다 새로운 시도가 있었고, 그 실험은 늘 대중의 사랑으로 이어졌다. ‘창밖의 여자’의 애잔한 감정선은 트로트의 울림을 품었고, ‘모나리자’의 리듬은 당시 한국에서는 낯설었던 팝록의 세련미를 담고 있었다. 조용필은 늘 대중보다 반 걸음 앞서 있었다. 하지만 그가 위대한 이유는 단지 음악적 실험에 있지 않다. 그는 ‘세월을 견디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군사력도, 기술력도 아니다. 바로 ‘통화(貨幣)’다. 그중에서도 기축통화(基軸通貨, Reserve Currency)는 국가 간 거래와 국제 무역, 자본 이동의 기준이 되는 중심 통화다. 다시 말해, 세계가 공통으로 신뢰하고 사용하는 ‘세계의 돈’이다. 오늘날 그 자리를 차지한 통화는 단연 미국 달러다. 하지만 달러가 처음부터 세계의 표준이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축통화의 자리는 시대의 패권 국가가 차지했다. 17세기에는 스페인의 은화(스페인 달러)가 유럽과 아메리카를 잇는 무역의 중심이었다. 이후 영국의 산업혁명과 해상 패권이 확립되면서 19세기에는 파운드화가 세계의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경제력과 금 보유량을 유지한 미국이 주도한 브레튼우즈 체제 아래에서, 달러는 금과 직접 교환 가능한 유일한 화폐로 지정되며 세계의 중심에 섰다. 그 결과, ‘달러=기축통화’라는 공식이 탄생했다. 하지만 기축통화의 지위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신뢰’의 문제다. 전 세계가 미국 달러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단지 미국이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금융 시스템과 정치적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다가오면 도시의 풍경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귀성 행렬로 붐비는 기차역과 고속도로, 정성껏 차린 음식과 함께 웃음소리가 오가는 집 안 풍경이다. 다른 하나는 도심의 어두운 골목, 지하철역 출입구, 쓸쓸히 놓여 있는 종이박스 위에 몸을 의탁한 노숙인의 그림자다. 모두가 집으로 향하는 시간, 그들에게는 돌아갈 집도, 기다리는 가족도 없다. 추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처럼 풍요와 나눔의 상징으로 자리해왔다. 그러나 풍요의 풍경 뒤편에서 우리는 늘 외면해온 빈자리와 마주해야 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달빛보다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명절을 맞이한다. 누군가는 고향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가족과의 만남을 기다리지만, 누군가는 편의점 앞에서 남은 도시락으로 배를 채운다. 이 간극은 단순히 개인의 불운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오랫동안 덮어둔 구조적 모순이자, 공동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에만 수천 명의 노숙인이 존재한다. 이들은 단순히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건강, 인간관계, 제도적 지원의 그물에서 동시에 이탈한 사람들이다. 명절이 되면 이 고립감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입시는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관문이다. 학부모와 수험생이 매년 수십만 명씩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러나 정작 이 경쟁의 규칙은 매년 조금씩 바뀌고, 제도는 수시와 정시, 학생부와 수능, 논술과 면접 등 수십 가지 변수로 나뉘어 있다. 입시 제도는 복잡하고, 대학은 매년 기준을 조정하며, 교육 정책은 정권과 상황에 따라 방향을 달리한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많은 학생과 학부모는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 채 불안 속에 결정을 내리곤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학입시연구소”라는 개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학입시연구소는 이름 그대로 입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기관이다.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곳이 아니라, 데이터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전략을 제시하며, 변화하는 제도를 추적하고, 학생 개개인의 상황에 맞춘 가이드를 제시한다. 사실상 사교육 시장에서는 이미 입시연구소 형태의 민간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입시 전문 학원은 자체 연구소를 두고 전형별 자료를 분석하거나, 언론사와 교육기업은 입시센터를 운영한다. 그러나 이들 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는 상업적 목적에 치우친 경우가 많다. 특정 학원의 프로그램이나
로스앤젤레스의 밤하늘은 손흥민의 이름으로 환히 빛나고 있다. 토트넘에서 10년을 보내고 MLS 무대로 이적한 그는 단 8경기 만에 8골을 터뜨리며 새로운 리그를 흔들고 있다. 이 기록은 단순히 스타 영입 효과를 넘어, 손흥민이 여전히 세계 정상급 공격수임을 입증하는 현재진행형의 증거다. 토트넘에서 LA로, 과거의 영광을 넘어 손흥민의 토트넘 시절은 이미 전설로 남아 있다. 아시아 선수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100골 고지 달성, 그리고 해리 케인과 함께 만들어낸 역사적인 득점 듀오. 토트넘 팬들은 그를 팀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손흥민은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시점에서도 그는 더 큰 도전을 택했다. 그 선택이 바로 MLS, 그리고 LAFC였다. 그의 이적은 당시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읽히고 있다. 미국 언론은 “손흥민의 합류는 MLS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라고 평하고 있고, 영국 언론은 “토트넘의 전설이 미국에서 또 다른 신화를 쓰고 있다”라며 연일 보도하고 있다. 한국 언론은 매 경기 그의 소식을 톱 기사로 다루며, 아시아 팬덤 전체가 MLS를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8경기 8골, 기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 자영업자들의 일상은 배달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매장에 손님이 줄어든 대신, 앱 주문이 쏟아졌다. 한때는 ‘구세주’ 같았던 배달앱이 이제는 ‘족쇄’로 느껴진다는 자영업자의 푸념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높은 수수료, 광고비 부담, 그리고 플랫폼 의존도 심화가 원인이다. 자영업자의 생존은 배달앱의 알고리즘에 좌우되고, 광고비를 더 쓰는 매장이 노출 우위를 점하면서 공정성 논란도 커졌다. 이제 질문은 하나다. “배달앱 의존에서 벗어나 독립 플랫폼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선 배달앱 의존의 구조적 원인을 짚을 필요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 앱에서 다양한 음식점, 편리한 결제, 빠른 배달을 누릴 수 있다. 이런 네트워크 효과는 ‘편리함’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작동한다. 반대로 자영업자는 개별적으로 앱 밖에서 고객을 모으기 힘들다. 기존 손님들에게 직거래를 권해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한 번의 터치로 모든 게 해결되는 앱을 선호한다. 결국 앱에 입점하지 않으면 고객 접근 자체가 어려워지는 구조다. “나만 탈퇴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일부 자영업자들은 자구책을 마련해왔다. 자체 앱을 개발하거나,
최근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주 4일제라는 파격적인 대안과 함께 현실적인 중간 단계로 떠오른 것이 바로 주 4.5일제 근무제도다. 이는 주 5일 근무제를 유지하되, 반나절을 줄여 주 4.5일만 근무하는 방식이다. 대체로 금요일 오후를 휴무로 두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 기업은 수요일·금요일 반차 형태로 운영하기도 한다. 주 4.5일제 논의의 배경에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청년 세대의 워라밸 요구, 그리고 해외 사례가 자리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해왔고, 과로와 번아웃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또한 젊은 세대일수록 단순한 임금보다 삶의 질, 자기계발, 휴식의 가치를 중시한다. 해외에서도 이미 주 4일제 또는 근무 단축 실험이 진행됐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주 35~36시간 근무 실험에서 생산성 저하가 거의 없었으며, 영국의 70여 개 기업은 주 4일제 실험 이후 90% 이상이 제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흐름은 한국 사회에도 영향을 미쳤고, 정부와 정치권에서 주 4.5일제를 “현실적인 과도기적 대안”으로 검토하는 이유가 되었다. 현재 주 4.5일제는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다. 다만 일
한국 대중문화에서 팬덤은 더 이상 단순한 소비 집단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과거 팬덤이 스타의 음반을 사고, 공연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보여주는 데 머물렀다면 이제는 사회적 현안을 움직이고, 자발적인 모금과 캠페인을 이끄는 거대한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취향 공동체의 확대가 아니라, 시민단체에 버금가는 사회적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기부 문화다. 특정 연예인의 생일이나 데뷔일에는 팬들이 모여 대규모 기부를 진행하는 일이 흔해졌다. 단순히 쌀 화환을 보내던 차원을 넘어, 장애인 시설 지원, 아동 복지 기금, 해외 재난 성금 모금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는 개인의 호감 표현이 집단적 실천으로 이어지며,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확산시키는 과정이다. 팬덤이 곧 사회적 나눔의 통로가 된 셈이다. 또한 환경 보호나 인권 문제 같은 사회적 캠페인에서도 팬덤은 적극적이다. 예컨대 아이돌 팬덤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나무를 심는 캠페인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거나, 특정 사회적 이슈와 연계해 기부를 집행하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주체가 개별 스타가 아니라 팬덤 스스로라는 사실이다. 스타의 이미지를 지키고 확장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팬덤이
추석이 다가온다. 달빛이 원을 그리듯 커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집을 향해 모인다. 이 시기마다 반복되는 준비의 풍경은 어쩌면 해마다 같으면서도, 해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마트의 진열대에는 과일이 묶음으로 포장되고, 온라인몰의 화면에는 ‘프리미엄 세트’라는 문구가 빛난다.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채우며 망설인다. 무엇을 고르는 것이 적당할까, 어느 선에서 멈추는 것이 지혜로울까. 선물은 언제나 단순한 물건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추석 선물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언어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정을 대신 전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부모에게 건네는 선물은 지난 한 해의 무사함에 대한 보고이자 안부다. 직장 동료와 상사에게 전하는 작은 정성은 서로의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기호가 된다. 하지만 이 언어는 늘 균형을 요구한다. 너무 가볍게 준비하면 성의가 부족해 보이고, 지나치게 무겁게 건네면 부담이 된다. 사람들은 그 미묘한 선을 가늠하며 상점의 진열대 앞에 선다. 이 무게의 문제는 단순히 금액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다. 오히려 선물에 담긴 맥락과 의미가 더 중요하다. 햇사과 한 상자를 준비할 때, 누군가는 과수원에서 직접 공수한 정직한 맛